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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잠 못 드는 밤

입력
2015.08.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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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염천이 찾아왔다. 예전에는 이즈음에 농사일이 뜸해서 어정칠월에 건들팔월이라는 말도 있지만 복숭아 과수원은 수확이 한창이라 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니 낮에는 그렇다 치고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좀체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 밤이다. 잠을 설치면 다음 날 더욱 힘이 들기 마련이다. 하여 더위가 극심했던 재작년 여름에 기어이 에어컨을 놓게 되었다. 놓았으되 형편에 맞게 방 한 칸에만 설치하고 정 더운 밤에만 그 방에 식구들이 모여서 자는 걸로 했다.

요 며칠 방에 침대 두 개를 붙여놓고 네 식구가 함께 잠을 잤다. 열대야를 겪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인데 부모와 함께 자야 하는 아이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열일곱, 스무 살의 다 큰 남매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여 은근히 내가 열대야 속으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것도 같았다. 요컨대 침대가 좁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바람대로 밖으로 나가는 대신 우리 침대보다 훨씬 좁은 어떤 침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나로서도 꽤나 충격을 받은 내용이라서 아이들 또한 곱다시 입을 다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책으로 읽은 내용인데 지금부터 백여년 전 유럽에 있던 어느 침대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최하층 계급을 형성하고 있던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한 글 중에 그들이 잠을 자는 기묘한 숙소에 관한 것이 있었다. 즉 한 방에 여러 명이 자야 하는데 장소가 극히 좁아서 줄 침대를 놓았다는 것이다. 누울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작은 방 가운데에 밧줄을 매어놓으면 노동자들은 그 밧줄에 의지해서 잠을 자야 했다. 눕지도 못하고 앉거나 서서 오직 밧줄에 의지해 잠을 청했다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광경이었다. 너무나 피곤해서 밧줄에서 늦잠을 자는 사람이 있으면 주인은 한 쪽 끝을 사정없이 풀어버림으로써 잠자던 이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게 했다고도 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아내까지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대는 것이었다. 내가 에두아르 푹스의 ‘풍속의 역사’에서 이 대목을 읽었을 때는 분명히 분노가 솟구쳤는데, 아무래도 내가 소설가 기질을 발휘해서 너무 재미있게 각색해서 들려준 모양이었다. 오래 전의 다른 나라 이야기여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하여 나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우리나라 이야기도 한 자락 들려주게 되었다.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동대문 봉제공장 이야기였다. 방 가운데를 나누어 이층으로 만들고 허리도 펴지 못하는 공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열다섯 시간을 혹사당하던 어린 노동자들, 지금의 내 자식보다도 어렸던 그 노동자들이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타이밍이라는 약을 먹으며 코피를 쏟는 광경을 들려주자 아이들은 조금 숙연해지는 듯했다.

그럭저럭 아이들은 잠이 들었는데 정작 잠이 달아난 것은 나였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분노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진정 분노했던 대목은 줄 침대에서 자는 노동자들의 맞은편에 주체할 수 없는 돈에 짓눌려 향락과 사치에 빠져있던 자본가들의 행태였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격차가 아니었다. 자본주의를 통해 평등한 개인이 탄생했다는 이론 따위를 다시는 믿지 않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나와 내 아이들은 이 땅에서 분명 99%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제 줄 침대 따위에서 자지 않고 염천에는 에어컨까지 켜고 사니 배부른 줄 알라는 윽박지름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평등에 대한 인간의 염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잠 오지 않는 밤, 얼키설키 잠든 아이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면 맨 처음은 나 자신일 거라는, 늦은 깨달음으로 여름을 넘는다.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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