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한 조선업계가 이번에는 금융권의 자금 회수 우려로 공포에 떨고 있다. 거액 손실에 이어 향후 업황 전망까지도 불투명해지자 시중은행들이 조선업 전반에 대한 대출 규모 축소 등을 검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은 이 같은 움직임이 가시화될 경우 대규모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보고 시중은행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0일 증권 및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사는 올해 상반기에만 총 4조9,600여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연간 기준 적자 규모가 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회사별로는 2분기 ‘해양플랜트 쇼크’의 장본인인 대우조선은 올해 연간으로 3조5,000억원 적자가 예상되며 삼성중공업이 1조5,000억원, 현대중공업은 6,000여억원 적자를 낼 것으로 분석됐다.
일회성 손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빅 배스(Big Bath)’로 2분기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지만 3분기 이후에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정우창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2분기 대규모 충당금 설정으로 3분기 영업이익률이 회복되겠지만 그 강도가 매우 약할 것”이라며 “저마진의 해양 생산설비 비중이 늘고 신규 수주도 둔화되는 추세라 조선주 업황이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이는 당장 신용등급 하락으로 직결됐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한국기업평가는 투자적격 마지노선 수준인 ‘BBB+’로 낮췄고,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BBB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도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내렸다.
이 같은 분위기는 금융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은 손실 규모가 큰 대우조선해양은 물론 한진중공업 등 다른 조선업체들에 대해서도 기존의 한도 축소나 신규 여신 금지 등을 포함한 자금 회수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업황에 이상 신호가 감지된 만큼 조선업 여신에 대한 재검토를 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불가피한 절차”라고 말했다.
자금 회수 결정이 날 경우 조선업체들이 받을 타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JP모건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은행들의 조선업에 대한 익스포져(대출채권 유가증권 지급보증 등)는 22조원에 달한다.
조선업계뿐 아니라 산업은행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이란 이유로 국가기간산업으로 분류된 조선업체들에 대한 대출을 늘려왔고, 이로 인해 대부분 조선사들의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발을 뺄 경우 산업은행이 이를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산업은행은 주채권은행의 자격으로 시중은행들에 자금 회수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기업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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