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식의 박근혜 대통령 참석 여부가 한국 외교의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올해 행사에 박 대통령을 포함, 50여 개국 주요 정상을 초청하는 등 각별한 정성을 쏟고 있다. 톈안먼 광장에서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도 예정돼 있다. 항일승전 기념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중국 상하이의 임시정부를 거점으로 항일투쟁을 한 우리 입장에서 명분은 충분하다.
문제는 복잡한 외교환경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지도자 대부분이 ‘행사의 정치성’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불참을 결정했고, 영국 프랑스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행사에는 참석하나, 열병식은 피하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참석을 밝힌 나라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국ㆍ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과 이집트, 체코 등이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일본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열병식 당일은 불참하되 그 전후로 중국을 방문하는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도 초청장을 받았으나 냉랭한 양국 관계 분위기상 참석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1989년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현장이 열병식 장소라는 것도 부담이다.
상황이 이렇자 중국은 박 대통령의 참석에 집중적인 외교노력을 벌이고 있다. 행사 성공이 박 대통령의 참석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묻어난다. 우리로선 난감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셈이다. 미국은 물론 박 대통령의 참석이 한미일 3각 공조를 깨려는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상황이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익에 기반한 주도적인 외교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주변국의 압력에 좌고우면하다 어정쩡하게 끌려들어가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한다. 지난 5월 러시아 전승절 행사처럼 막판까지 눈치를 보다 미국, 러시아 모두에도 신뢰를 잃는 우를 반복해선 안 된다.
북핵 공조, 동북아에서의 외교고립 탈피라는 의미 외에 항일의 의미를 되새기고, 일본 정부의 역사수정주의 행태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박 대통령은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게 옳다. 마침 같은 날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이 열리니 명분도 더욱 분명하다. 중국에 경도된다는 미국의 오해는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우리가 참석하는 이유와 명분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변국의 의심을 푸는 적극적인 노력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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