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투하 70년 한일 공동성명
피폭자들의 참상 증언 시간도
“저녁에 들리는 슬픈 종소리. 늙은 어미의 노래인가. 다 타버린 우라카미 언덕에 영원히 잠든 아들을 향한 자장가인가. 전쟁은 끝나고 남겨진 것은 어미없는 아이들과 아이 없는 어미와 계절마다 부른 바람에 흰꽃은 피고….”
70년 전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8월 9일. 나가사키에서만 7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7만여명이 다쳤던 이날 ‘평화의 배’인 오션드림호 선상에는 피폭자 합창단인 ‘해바라기’가 부르는 노래가 은은히 퍼졌다.
‘피폭 70년 나가사키에서 미래로’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2015 피스&그린보트 2015’마지막 공식 프로그램. 원폭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당시 참상을 널리 알리면서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다양한 공연과 피폭증언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노래를 부른 ‘해바라기’합창단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을 때 0~16세였던 사람들이 만든 모임으로 70대 이상 고령자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나가사키 마쓰야마 평화공원 내 평화기념동상 앞에서 열린 피폭 70주년 나가사키 원폭희생자위령평화기원식에도 참석해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피폭자들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히로시마 피폭자인 사사모리 시게코씨에 이어 한국인 피폭자 이곡지(75ㆍ여)씨의 증언도 있었다. 일본 피스보트 초청으로 피스&그린보트에 참가한 그는“히로시마에서 살다가 피폭을 당해 아버지와 언니를 잃었다”며 “나는 당시 다치지 않았지만 나중에 희귀병에 걸려 2005년 죽은 아들(당시 35세)이 원폭 2세에게 나타나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피스보트가 세계일주를 하면서 제작한 원폭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 ‘피폭자 증언 항해’상영과, 낭독극 ‘천사의 날개가 떨어진 날’공연도 펼쳐졌다. 또한 5일 선상공연을 펼쳐 오션드림호의 스타로 떠올랐던 소리꾼 장사익은 다시 무대에 올라‘찔레꽃’‘아리랑’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행사에는 피스보트에 승선한 한국인과 일본인 승객 300여명 외에 간 나오토(菅直人) 전 일본 총리(중의원 의원)와 다노우에 도미히사(田上富久) 나가사키 시장도 참석했다.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원폭 투하 70년인 이날 피스&그린보트가 나가사키에 입항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피폭자들이 전세계에 원폭의 위험을 알리는 피폭특사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이종승 한국일보사장도 “나가사키 피폭 현장을 둘러보면서 핵무기는 인류의 재앙을 가져오는 악마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했다”며 “세계 평화와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피스&그린보트의 순항을 위해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제8회‘피스&그린보트 2015’를 주최한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핵도 전쟁도 없는 지속 가능한 동아시아를 향하는 한일시민 전후 70년 성명’이라는 제목에서 두 단체는 동아시아의 환경과 평화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정부에 대해 ▦핵무기 폐기를 향한 국제합의 서명과 핵무기금지조약 실현을 향한 외교노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해 ‘침략’‘식민지지배’‘통절한 반성’‘진심으로 사죄’표현과 평화외교 실행 ▦일본의 안보관련법안 폐기 ▦센다이 원전 재가동 취소 등을 요청했다.
나가사키=최진환기자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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