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마다 다른 내용 흘려
여론 탐색, 궤도 수정 저울질하는 듯
아베 내각 지지율 32%까지 추락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를 놓고 일본 언론에서 상반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 측이 언론사마다 다른 내용을 흘려 여론을 떠본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설사 ‘침략’‘사죄’등의 표현을 담더라도 ‘일본의 침략 행위’를 의미하는 문맥이 아닌 일반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NHK는 아베 담화의 원안에 ‘식민지 지배’‘침략’‘통절한 반성’‘사죄’등 ‘무라야마 담화’(1995년)의 핵심 키워드가 모두 명기됐다고 정치권 관계자를 인용해 10일 보도했다. 부전(不戰)을 맹세하는 한편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속할 방침을 명기한다는 설명이다. NHK는 “국민 대다수가 공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내각 간부의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과거 역사나 역대 정권의 대응을 거론하는 대목 등에 이런 표현이 들어가 있다는 것으로 미뤄볼 때 역사의 구체적 사실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아니라 역대 정권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식의 간접표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NHK의 보도는 전날 아사히(朝日)신문이 아베 담화 초안에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을 포함했으나, ‘사죄’란 표현은 물론 그와 유사한 문구도 없다고 전한 내용과 상반된다. 이와 관련, 아베 총리가 ‘사죄’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란 산케이(産經)신문의 이날 보도가 주목된다. 이 신문은 “총리가 담화에서 ‘침략’을 언급하는 방향”이라면서 일본의 전쟁만을 지목해 침략이라 하기 보다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위로서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 아베 총리 자문기구가 6일 제출한 보고서엔 “일본의 행위만 침략으로 단정하는 것에 저항이 있다”는 의견이 담겼다.
교도(共同)통신도 아베 총리가 침략 문구를 포함할 의향을 굳혔다며 1929년 대공황과 국제정세나 1931년 만주사변, 1936년 일본 청년장교들의 군사반란인 2·26 사건 등 2차 대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경위를 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올 4월 아시아ㆍ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 60주년 정상회의 연설 때 보여준 간접방식으로 침략을 거론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당시 아베는 “침략의 위협으로 타국의 영토보전을 침해하지 않는다” 등의 1955년 반둥회의 원칙을 간접 언급하는 변칙을 짜냈다. 결국 아베가 설사 무라야마 담화의 키워드를 전부 거론하더라도 제국주의 시대 세계 각지에서 침략이 있었다는 뉘앙스가 가미된 ‘물타기’에 그칠 개연성이 거론된다.
아베 담화는 한국어ㆍ중국어ㆍ영어 번역본까지 낼 예정이어서 국제여론 탐색은 물론 궤도수정 여부로 고민이 계속될 것 같다. 일본 외교가에선 복수의 상반된 안이 총리 책상에 놓여 있으며 어느 플랜을 선택할지는 직전까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사죄 표현이 없으면) 이웃국가들 사이에 다시 의심을 낳는다”고 압박을 계속했다. 반면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 모임’의 스기하라 세이시로(杉原誠四郞) 회장은 “침략, 사죄 표현을 일본을 단죄하는 문맥으로 쓰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32%까지 떨어졌다. 이전 조사보다 3%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9%였다. 30%대는 조기총선 요구가 촉발되는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여성 지지율은 26%까지 하락했다. 더욱이 11일 예정된 규슈(九州)전력의 센다이(川內) 원전 재가동과 관련해선 ‘반대’가 57%로 찬성(30%)을 웃돌았다. 후쿠시마 사고 여파로 ‘원전 제로’ 상태였던 일본이 2년 정도 만에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여론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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