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파란만장한 이력의 사찰 터가 발견됐다. 백제시대에 이곳에 처음 세워진 용도 불명의 건물이 통일신라시대에 사찰로 쓰이다가 조선시대에는 폐사된 후 유교 관련 시설로 사용된 듯 보인다.
국강고고학연구소는 10일 충남 서천군 종천면 신검리에 있는 농업용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부지에서 약 1만㎡에 이르는 사찰지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유적에서는 문헌상 존재하지 않는 ‘회창오년(會昌五年) 운갑사(雲岬寺)’ ‘개복사 (開福寺)’ 등이 적힌 기와가 출토됐다. 회창 5년은 당 무종(武宗) 5년, 통일신라 문성왕(文聖王) 7년으로 서기 845년을 의미하며, 운갑사는 통일신라 때, 개복사는 고려 때 사찰의 이름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불두편(불상 머리 조각)도 출토됐다. 차재동 국강고고학연구소장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운갑사였다가 고려가 건국되면서 왕건이 충남 지역으로 내려온 시점에 기존 절을 허물고 개복사라는 새로운 절로 재창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운갑사가 건설된 통일신라 시대 이전에도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에 조성된 가로 3칸, 세로 2칸의 작은 건물 흔적과 넓은 기단이 발견된 것이다. 백제시대 건물의 용도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사단은 함께 발견된 연화문 수막새 등을 토대로 관청이나 객관(客館), 사원 등의 용도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통일신라시대 운갑사 유적은 백제시대 세워진 건물의 흔적을 그대로 활용했다. 고려 때 재창건된 개복사는 조선시대에도 건물이 일부 살아남았다. 조선 때 건물 용도는 명확하지 않지만, 석조 불상의 조각을 담장 재료로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사찰은 사라지고 유교적인 용도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백제에서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생산유적이 대거 발견됐다. 백제시대에 조성된 토기ㆍ기와가마와 주조유구(鑄造遺構ㆍ청동이나 철을 녹인 쇳물을 부어 종을 만들던 시설), 통일신라와 고려 대에 사용된 기와가마, 조선시대에 만든 도기가마와 숯가마 등이 있다. 차 소장은 “건물 주변의 가마는 해당 건물을 비롯해 주변 지역에 기와와 토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말했다. 문화재청은 발굴조사가 완료된 후 조사 내용을 토대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유적의 보존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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