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유난히 더위를 탄다. 낮에 밖에 나가면 그냥 더운 게 아니라 온 몸의 피부가 불에 덴 듯하다. 옷으로 감춘 살까지 그렇다. 햇볕도 햇볕이지만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을 달구고 날아오른 열기에 피부가 약해진 모양이다. 밤도 괴롭다. 지난해는 초저녁 두어 시간 냉방기를 틀면 그 냉기로 아침에 눈뜰 때까지 버틸 만했는데 요 며칠은 새벽에 깨 흥건한 땀을 닦으며 냉방기 리모컨을 찾아야 했다. 밤낮으로 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이 삼복더위가 언제나 끝나나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복날이 보통 열흘 간격이니, 지난 2일이 말복일 법했다. 그런데 올해는 12일이니 ‘뛰어넘은’ 복날인 ‘월복(越伏)’이다. 복날은 하지(6월22일) 이후 세 번째 경일(庚日), 즉 일진의 천간이 경(庚)인 날 시작된다. 6월23일 경오(庚午), 7월3일 경진(庚辰) 날을 지나 7월13일 경인(庚寅) 날이 초복이었다. 열흘 뒤의 중복은 경자(庚子) 날이었다. 그런데 ‘열흘 간격’이라는 삼복의 일반규칙은 ‘말복은 반드시 입추(立秋) 뒤’라는 예외규칙에 양보한다. 지난 8일이 입추여서 경술(庚戌) 날인 2일은 말복이 될 수 없었다.
▦ 월복은 옛사람들이 음력을 고집하면서도 날짜를 최대한 계절에 맞추려고 도입한 장치다. 하지는 연중 태양의 남중(南中) 고도가 가장 높은 날이다. 지표면이 가장 많은 햇볕에 노출되는 날이지만, 땅이 데워져 최대 복사열을 내뿜으려면 한 달은 있어야 한다. 초복이 하지 이후 12일 만에 찾아온 올 같은 해는 입추 뒤로 말복을 늦추어 삼복 뒤에 폭서를 겪는 엉뚱한 일을 막았다. 태양의 길인 황도(黃道)를 쪼개어 정한 24절기는 사실상의 양력이어서 ‘입추 이후’라는 규칙이 힘을 갖는다.
▦ 복날을 굳이 경일로 정한 데선 하루 빨리 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읽힌다. 경은 오행(五行) 중 금(金)의 기운, 즉 가을 기운이 가장 왕성한 천간이다. 맹위를 떨치는 더위를 바로 억누를 수는 없더라도 가을 기운이라도 듬뿍 쐬어 주자는 생각이었을 게다. 찬바람이 불기도 전에 일찌감치 ‘가을을 세우는’ 입추(立秋) 또한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월복’은 ‘복을 뛰어넘다’의 뜻으로 새길 수도 있다. 더위를 이겨내려는 적극적 의지야말로 최상의 피서일지도 모른다. 더위보다 약해진 스스로의 의지박약으로 눈길을 돌려야겠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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