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시인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첫 경험은 누구에게나 짜릿한 기분을 선사한다. 박지성(34)에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데뷔전은 첫 키스의 추억과도 같다.
맨유는 9일(한국시간) 입단 10주년을 맞은 박지성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박지성은 2005년 8월 9일 맨유 유니폼을 입고 헝가리 클럽 데브레첸과 챔피언스리그 예선 경기에 첫 출전했다.
박지성은 '경기에 출전한다는 사실을 언제 처음 알게 됐나'라는 질문에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유 감독은 원래 경기 전날까지 선발 명단을 알려주지 않는다. 항상 경기 당일 아침 얘기해주곤 했다. 그날 출전 명단에 들어서 '어쩌면 뛸 기회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몸을 풀라고 했을 때 긴장되지는 않았다. 로이 킨을 대신해 투입됐을 때는 우리가 앞서 나가고 있었고, 그래서 부담도 크지 않았다. 한두 번 실수를 했던 것 같지만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데브레첸은 강력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긴장하진 않았던 것 같다. PSV 아인트호벤서 이미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했다. 데브레첸과 경기는 예선전이었고 시즌 첫 경기였다. 관중이 완전히 차지는 않았지만 내겐 다른 경험이긴 했다. 모든 게 새로웠고, 출발선에 섰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데뷔전을 떠올렸다. 아울러 박지성은 "뤼드 반 니스텔루이, 웨인 루니, 에드윈 반 데 사르, 리오 퍼디낸드, 미카엘 실베스트르, 폴 스콜스가 출전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발 명단에는 박지성이 언급한 이들 외에 게리 네빌과 존 오셰이, 대런 플레쳐, 로이 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포함됐다.
박지성은 입단 후 적응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맨유에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벤치에 앉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한국의 누군가에게 전화할 여유가 없었다. 기대에 차 있었으면서도 일단 집중하려 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맨유에 적응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경기 후 퍼거슨 전 감독의 말을 또렷이 기억했다. 박지성은 "퍼거슨 전 감독이 나에게 '프리미어리그에 온 것을 환영해'라는 말을 했다"며 "나는 '그래, 내가 EPL에 데뷔했다. 물론 이건 시작일 뿐이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박지성은 "맨유와 계약했을 때 처음 올드트래포드(맨유 홈구장) 입장 통로를 걸었다. 기자 회견을 마친 후 입장 통로를 거쳐 그라운드로 걸어갔다. 경기 당일이 아니어서 경기장은 비어있었지만, 그럼에도 올드트래포드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데브레첸전에서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입장 통로로 걸어 나가지 못했다. 처음으로 그곳을 걸어 나간 것은 11일 후 선발로 출전했던 애스턴 빌라전이었다. 모든 팬들이 노래하고 있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내겐 특별한 순간이었다"고 추억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맨유 유니폼을 입고 205경기에 출전해 27골 26도움을 넣은 박지성은 은퇴 후 '맨유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박지성(왼쪽)과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 출처는 맨유 공식 SNS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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