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서울 회의서 의견 모아
항공·금융·통신 대재앙 가능성
"1초 차이는 보정할 필요 없어"
미국·호주 등 다수 국가 찬성
러시아·영국 등은 유지 주장
만장일치 돼야 폐지 가능해
정부 '월말 대신 주말 시행' 차선안

전세계가 윤초 제도를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우리나라와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이 폐지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윤초는 지구 자전으로 결정되는 자연시간(천문시)과 세슘 동위원소의 떨림 속도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인공시간(원자시)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전세계가 특정 시각에 1초를 끼워 넣거나 빼는 국제 제도다. 하지만 윤초 제도의 필요성 여부를 놓고 세계 각국의 의견이 갈려 11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전파통신회의(WRC)에서 존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9일 과학계에 따르면 우리와 아태지역 국가들은 최근 윤초 제도 폐지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WRC 아태협의체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한국천문연구원의 정현수 책임연구원은 “지난달 27일부터 6일간 서울에서 열린 아태협의체 회의 결과 윤초 폐지를 위한 공동 제안서를 WRC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초 제도는 1972년 처음 실시된 이후 27번째로 전세계에서 동시에 지난달 1일(한국시간) 오전 8시 59분 59초와 9시 0분 0초 사이에 1초를 끼워 넣었다. 문제는 윤초가 나라마다 입장 차이가 커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점이다.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곳은 미국과 러시아다. 미국은 윤초 폐지, 러시아는 유지 입장이다.
미국은 윤초 시행에 따른 위험 부담을 이유로 반대한다. 우리도 같은 입장이다. 정밀한 시간 측정이 필수인 정보통신이나 항공우주, 금융 분야는 윤초 시행 때마다 비상이 걸린다. 장비가 시간 불일치로 오작동해 큰 혼란이나 손실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면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주는 발권 시스템이 윤초를 인식하지 못해 먹통이 되면서 항공기 수백편이 지연된 경험을 했다. 기술과 자금이 부족한 개발도상국들도 대비 시스템을 갖추기 힘들다 보니 윤초 폐지에 적극적이다. 여기에 일부 국가들은 윤초를 넣거나 빼지 않아도 천문시와 원자시가 1분 이상 차이 나려면 100년이 족히 걸리기 때문에 폐지해도 큰 문제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러시아와 영국 등은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잘 지켜온 윤초를 갑자기 폐지하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러시아는 위성항법시스템(GLONASS)이 미국(GPS)과 달라 윤초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폐지를 반대한다. 영국은 그리니치 천문대가 천문시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어서 윤초 시행 때마다 주목을 받은 점을 감안해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윤초 제도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나기 힘들다. 정 연구원은 “현재 폐지와 유지 입장이 7대 3 정도”라고 전했다.
하지만 WRC 총회는 만장일치 방식이어서 폐지하려면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당분간 윤초를 유지하되 시행 시점을 주말로 정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현재 윤초는 3, 6, 9, 12월 말일에만 실시하는데 올해처럼 평일에 실시하면 사회 시스템 혼란 등 위험 부담이 커진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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