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디자이너 황재근
코믹 복면 매주 8~10개씩 제작
"동네 생활용품 매장서 영감 얻지만 B급 디자인 평가에 동의 못해"
“제가 가장 아끼는 클레오파트라 가면이에요. 눈썹이랑 안경 하나만으로 엄숙함이 코믹함으로 바뀌었죠?(웃음)”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에 등장하는 가면들은 모두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39)의 손에서 탄생한다. 그는 지난 1일부터는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이텔)’에 ‘복면재근’으로 출연해 일시 하차한 백종원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9일 서울 황학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스페인 유명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빼 닮은 콧수염을 실룩이며 질문에 응했다.
황재근의 이력은 우스꽝스러운 가면들과는 거리가 있다. 세계 3개 패션스쿨로 꼽히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한국인 최초로 졸업했고 2013년 패션디자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올스타’(‘프런코’)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프런코’에서 화려하고 때로는 난해해 보이는 콘셉트의 의상들을 주로 선보이며 심사위원들에게 극찬을 받기도 했다.
화려, 시크, 럭셔리 등의 수식이 따라붙을 패션 디자이너에게 ‘복면가왕’의 가면 제작은 생소하기만 했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 특성 상 가면들을 최대한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야 해 처음엔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4ㆍ5ㆍ6ㆍ7대 복면가왕이 착용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황금가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평소 좋아하는 캐릭터라 하루 꼬박 걸려 공을 들인 첫 작품인데 무섭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친숙하게 보이기 위해 안경 같은 액세서리로 수정 작업을 거쳤다”며 가면 탄생 비화를 전했다.
가면의 코믹성을 부각시키는 재료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들이다. 양쪽 귀에 홍고추 모양의 대형 귀걸이를 한 ‘매운맛을 보여주마 고추아가씨’, 타다 남은 모기향 모양의 ‘모기향 필 무렵’, 햇빛가리개 모자를 활용한 ‘어머니는 자외선이 싫다고 하셨어’ 등의 가면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에다 재치 있는 이름까지 더해져 연일 화제에 올랐다.
폭소를 자아내는 외형 때문에 수준 낮은 ‘B급 디자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황재근은 동의하지 않는다. “동네 생활용품 매장에 있는 흔해빠진 물건에서 영감을 얻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디자인 역량”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거기에 급을 나눈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요새 그가 출연한 ‘마이텔’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그는 방송인 홍석천을 닮은 외모와 말투로 직접 디자인한 가면을 소개하며 관심을 끌었다. 방송이 처음은 아니지만 주변의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아직은 버겁다. 그는 “처음 생방송을 마치고 망했다고 생각했다(웃음)”면서 “나 같은 캐릭터는 호불호가 강한데 채팅방을 보면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란 생각도 했다”며 크게 웃었다.
일주일에 8~10개씩 만들어야 하는 가면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다는 그는 “디자이너라고 권위와 엄숙함만 내세우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독특하되 친근한 이미지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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