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DMZ평화예술제 개최
북한 땅 보이는 강화 평화전망대서
분단 65년 빗대 '신랑 없는 결혼식'
12일 고성군, 14일 철원군으로
9일 오후 인천 강화군 양사면 강화 평화전망대. 북한 예성강과 황해도 개풍군이 보이는 잔디마당에 잔치가 벌어졌다. ‘맹진사댁 딸 꽃분이가 시집간다’는 소문에 강화주민 150여 명도 잔디마당에 모였다. 북과 징 장구 꽹과리를 든 풍물패가 잔디마당을 돌다가 한가운데 모여 상모를 돌리고 꽃분아씨의 몸종이자 자칭 ‘이 잔치의 사회자’인 깝순이가 나와 흥을 돋웠다. “인륜지대사인데 그냥 결혼식만 할 순 없잖아요,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친 예술팀이 축하공연을 펼치겠습니다.”
미얀마와 필리핀 등 ‘진짜 동남아’에서 온 예술가 40여명이 각각 전통 미얀마 결혼식과 필리핀 전통 무용 등을 재현한 축하무대를 펼쳤다. 맹진사가 하객들에게 축의금을 물어보며 들뜬 사이 깝순이가 소리친다. “큰일 났습니다. 신랑이 식장에 안 왔어요!”
“이빨이 없으면 잇몸을 써! 많은 하객 중에서 낚싯대로 하나 낚으면 되는 거 아냐!” 맹진사는 객석에서 사위 찾기에 나서고, 우여곡절 끝에 혼례를 치르고, 아시아예술가들이 잔디마당에 모여 이들을 축하하는 길놀이를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김봉렬ㆍ한예종)는 광복 70년을 기념해 최서북단 휴전선,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어크로스 어롱(Across & Along)-평화를 향해, 함께 앞으로’를 주제로 베트남과 브루나이,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예술가와 한예종 출신의 젊은 예술인들이 참여한 ‘아시아 신진예술가 100인의 DMZ평화예술제(평화예술제)’를 이날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철원군이 주최하고 한예종이 주관한 공연은 휴전선 서북단에서 동북단을 따라 고성군(12일) 철원군(14일)으로도 이어진다.
김봉렬 총장은 “한예종이 평양에 분교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약 10년전부터 남북교류에 관심을 보여왔다는데, 마침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한 행사사업을 공모해 추진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한예종은 이와 함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를 통해 북한 최고 기관인 김원균평양음악대학과의 협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강화 평화전망대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던 강화군 양서면 철산리 민통선 북방지역에 세워져 2008년 개관한 곳으로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극적인 공간이다. 좌측으로 황해도 연안군에서 백천군으로 펼쳐진 연백평야가 보이고, 우측은 개풍군의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공단 탑 등이 보인다. 평화예술제의 시작을 알리기에 안성맞춤의 장소다. 최준호 한예종 연극원 교수는 “강화 평화전망대 공연은 분단현실을 ‘신랑 없는 결혼식’에 빗댄 연희극 ‘새출발-혼례굿’이다”며 “우여곡절 끝에 신랑을 찾아 혼례를 올리는 두 사람을 통해 평화예술제와 한반도 역사의 새 출발을 알리는 무대”라고 소개했다.
평화예술제는 12일 휴전선 최동북단에 위치한 고성 통일전망대와 14일 휴전선 중간지대인 철원 노동당사로 이어진다. 고성통일전망대에서 열린 ‘통일 염원굿’은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분들을 위한 위령제를 시작으로 전망대를 바라보며 100인의 예술가들이 통일을 염원하는 퍼포먼스와 클래식 연주를 선사한다.
평화예술제 대미를 장식하는 14일 ‘평화기원제’는 남북의 만남을 묘사한 줄타기 퍼포먼스,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LDP무용단의 ‘노 코멘트’, 김남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이 지휘하는 ‘영재 70인조 바이올린 오케스트라’가 장식한다.
일반인들도 참여 가능하며, 각 전망대 검문소 안 매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02)746-9481
강화=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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