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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선거유세에 나선 광대들

입력
2015.08.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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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재벌이자 리얼리티 쇼 진행자인 도널드 트럼프(NBC ‘어프렌티스’ 출연 이후 ‘더 도널드’로 불리기도 한다)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될 것 같진 않다. 그는 매사에 시끄럽고 무례하며 무식하다. 빗질로 부풀린 금발머리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들마저 그를 ‘로데오 광대’라고 부르고 그의 선거 캠페인을 ‘서커스’라고 비꼰다.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는 그의 선거 캠페인 기사를 꼭 연예 뉴스로 분류한다.

현재는 트럼프가 모든 공화당 대선 후보 경쟁자들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미국 정치가 아주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무척이나 예외적이다. 트럼프의 인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명하지 못한 방식이지만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표현처럼 트럼프 지지자들을 모두 ‘미치광이들’이라고 해야 할까.

트럼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현 정권에 불만이 많은 유권자들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영합한다고 주장한다. 이 유권자들은 외국인(특별히 멕시코인)을 싫어하고, 은행가(또는 그와 관련된 고학력자들)를 불신하며, 아버지가 흑인인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트럼프는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의 말처럼 “미국의 신분증” 같은 존재이거나 적어도 주로 소도시에 살며 백인이고 노인인 대다수 미국인의 신분증 같은 존재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민주주의 세계 도처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정부에 불만이 많은 유권자들은 미국이든 유럽이든 인도든 세계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주류 정당을 외면하는 한편 부패한 엘리트를 정권의 중심에서 쫓아내겠다고 약속하는 포퓰리즘 정치인을 따른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공통적으로 정치적 연예인 또는 광대를 좋아한다.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정당을 이끌고 있다. 그의 목표는 이탈리아의 정계 지배층을 전복하고 유럽연합(EU)을 뒤엎어 이탈리아를 탈퇴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인들이 총선에서 광대 같은 이 인물에게 세 번이나 표를 던지긴 했다. 크루즈선 가수로 시작해 부동산 재벌이 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트럼프보다 훨씬 더 과격하다. 게다가 그는 매스미디어의 주인이다. 말 그대로 이탈리아에 있는 대부분의 매스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막말과 별난 행동에도 불구하고 베를루스코니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걸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이건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오싹한 광대 브로조’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TV 코미디언 빅토르 트루히요는 멕시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해설가가 됐다. 광대 같은 정치인이 많지 않은 네덜란드에선 항상 재미있고 도발적인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대담한 동성애자 핌 포르튀인이 맨 먼저 포퓰리즘의 돌풍을 일으켰다. 베를루스코니와 트럼트처럼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는 재능은 그에게 장애 요인이 아니라 귀중한 자산이었다. 2002년 포르튀인이 끔찍하게 숨진 뒤 순백에 가까운 금발로 염색한 전직 펑크 로커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네덜란드 포퓰리즘의 기수로 떠올랐다.

특이한 헤어스타일들을 제외하더라도(대머리인 베를루스코니는 머리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최근의 포퓰리즘 정치인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억만장자든 아니든 그들은 자신을 따돌린다고 생각하는 엘리트들에게 가시 돋친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빌더르스와 트럼프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반이민자 정서에 영합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멕시코인들을 “강간자들”이라고 불렀다. 빌더르스는 코란을 금지하고 네덜란드에 이슬람교도가 이민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이 역시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인 엘리트 계층을 향한 분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유럽에선 이민자들이나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EU에 대한 적대감으로 손쉽게 옮겨간다. EU를 뿌리 깊은 엘리트 계층의 또 다른 요새로 보기 때문이다. 이건 빌더르스와 그릴로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견해다.

정치적 광대들이 잘나가는 데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업으로 정치를 하는 계급에 염증을 느낀다. 과거 보수주의자들이 부유한 사업가나 지주 출신이었던 반면 좌파 정치인들은 대개 노동조합 출신이었다. 사회적 계급이 그들의 관심사를 결정했고, 분명한 이념적 차이로 나뉜 정당들이 그 관심사를 대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서로 다른 정당 소속 정치인들 사이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워싱턴’ ‘브뤼셀’ ‘월스트리트’ 같은 분류 아래 한 덩이로 묶일 뿐이라고 본다. 이런 인식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특히 미국에선 더욱 그렇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특히 상ㆍ하원을 장악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라면 미국은 지금과 다른 나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념적 차이가 대체로 무너졌다는 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분명한 사실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유방임적 보수주의자들과 연립정부를 만들어 통치한다. 신자유주의는 군림한다. 정치는 점점 같은 계급 정치인들끼리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조작된 시스템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그들은 견해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거나 좀 더 큰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그리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나 그릴로를 둘러싼 현상은 전업 정치인들에 대한 반란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놓고 민주당과 싸우는 것뿐 아니라 공화당 지배층과도 경쟁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워싱턴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부끼리 타협하는 것에 넌더리가 나 있다. 양당 체제에서 정치인들이 협력하는 일은 그들에게는 크고 다종다양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 별 필요도 없고 오히려 정치가 타락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5년 전 민주당과 타협하느니 정부를 폐쇄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 공화당 극우파 티파티 소속 정치인들에게 사람들이 투표한 이유가 여기 있다. 트럼프처럼 요란한 허풍선이에게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타협 없는 민주주의 통치란 불가능하다. 미국은 현재 이런 문제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이 되진 않겠지만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이미 정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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