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알파걸'로 불렸던 3545
사회적 성취·직업적 성공 불구, 주위선 미혼에 대한 '색안경' 만연
"30대 초 혼인 기회 몇번 지나간 후 남들엔 일상인 결혼 왜 이리 힘든지"
창조적이고 개성 강한 신세대라는 뜻에서 ‘X세대’로 칭송 받았고, 남성보다 뛰어나고 적극적인 ‘알파걸’로도 불렸다. 마케팅 업체들은 자기애가 강하고 소비 여력이 있는 그들을 ‘골드 미스’라며 떠받들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결혼파업 세대’로 불리며, ‘저출산의 주범’이라는 시선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바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된 1970년대 태어나 처음으로 아들 못지 않게 교육 받은 3545세대 여성이다. 지금 그들은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한 게 아니다”고 항변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속사정과 생활에 대한 70년대생 미혼여성의 이야기다.
강단에 서기 10분 전. 오늘도 나는 약지에 ‘가짜 결혼반지’를 낀다.
내 나이 올해로 마흔 둘, 1974년생이다. 오늘처럼 팀장급 이상을 상대로 하는 기업체 강의에 나설 때면 혼기를 놓친 사실이 새삼 속상하다. 미혼이어서 내 역량을 공정하게 평가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서다. 내 또래는 그 어떤 가치보다 사회적 성취가 중요하다고 배우며 자랐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강사로 전문성을 인정 받기 위해 학업과 인맥 관리에 매진하느라 지금껏 미혼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반지를 끼고 강단에 선다. 청중이 자연스럽게 나를 기혼자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밤잠 설쳐 가며 준비한 강의 내용과 관계 없이 “부부갈등도 경험하지 못한 채로 소통을 이야기하느냐”는 왜곡된 평가가 돌아올 게 두렵다.
30대 초반에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당시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한 결혼 마지노선인 30대 초반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서른 한 살에 만난 동갑내기 남자친구는 새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의 ‘나인 투 식스’를 지키던 나와 생활 패턴이 너무 달랐다. 그와 헤어진 후 직장생활을 접고 전문 강사로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멋진 여성으로 오롯이 홀로 서고 싶었다.
우리 세대는 외환위기 시절에 사회에 진출해 일자리 눈높이를 낮춰야 했던 IMF세대다. 또 스물아홉 여성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싱글즈’(2003) 같은 영화를 보면서 ‘내 인생은 나 스스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확신을 키워 온 세대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더 나은 직장과 직업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다니던 교육재단에 사직서를 내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서른 세 살 때 오래 알고 지낸 친구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러나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다. “아내의 자아와 존재감도 중요하다”는 나와 달리 그는 “무조건 출산과 육아가 우선”이라며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그래서 또 한 번 이별을 겪었고, 서른 넷 이후 몇 차례 혼처를 소개 받기도 했지만 일과 학업 중심으로 생활하다 보니 대부분 단발성에 그쳤다.
직업적으로는 많은 성과를 거뒀다.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을 나와 소통 전문 강사로 7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학과 기업, 공공기관 등으로 강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외래교수로 나가는 한양여대 강의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일정이 한가할 때마다 문득문득 밀려드는 외로움을 감당하기 힘들다. 마흔 넘은 미혼 여성이 결혼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잘 알기에 외로움은 더 크다. 얼마 전 거리에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에게서 명함을 받았다. 화려한 남성회원 프로필을 읊어대며 가입을 권유하기에 “그렇게 좋은 조건을 가진 내 또래를 만나게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뒷걸음질 쳤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것도 아닌데 남들에겐 일상인 결혼이 왜 이렇게 힘든지.
직업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요리가 취미일 만큼 가정생활에 대한 준비도 차근차근 해 왔다. 그러나 누군가를 소개 받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졌고 동호회 등 다양한 만남의 채널로 뛰어들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 딜레마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유독 미혼 비율이 높은 1970년대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심희준(42) 한양여대 비서인재과 외래교수를 인터뷰해 1인칭으로 내용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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