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한국어 자막 입혀, 한일 양국 오가며 상영회 주관

5일 오후 피스&그린보트 선상에서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 상영회를 주관한 신이화(50)씨는 이 영화의 한국어판 프로듀서이자 제작자 고 신기수 선생의 둘째 딸이다.
영국에서 NHK, BBC 같은 방송사에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납품하는 일을 했던 그는 조선통신사 연구와 영화제작에 매달린 선친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최근 아예 한국에 정착했다. 아버지의 영화필름에 손수 한국어 자막을 입히기 위해 4년 반 전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그는 현재 한일 양국을 오가며 부지런히 영화 상영회를 열고 있다. 한일 관계가 어려울수록 이 영화가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조선통신사 영화를 만든 것은 그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1970년대 초 아버지가 고서 시장에서 조선통신사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을 발견했을 무렵 한일 양국의 학자, 작가, 영화감독, 언론사 관계자 등 손님들이 밤늦게까지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그림을 소재로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날이 있었어요. 아마 처음 손에 넣은 두루마리 그림을 보여드린 날이었던 거 같아요. 오사카 우리 집은 가족이 4명뿐이었는데 이불은 10채나 됐어요. 아마도 그런 날을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당시 아버지는 집을 담보로 구한 돈으로 자료를 구해오기도 했다. “그때는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버지의 열정이 이해 된다”고 그는 말했다.
교토에서 태어나 일본 교육을 받은 아버지는 학창 시절 일기에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다’고 적을 정도로 뼛속까지 일본인으로 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실은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아버지는 더욱더 사실에 근거한 올바른 역사를 균형 있게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고 신씨는 소개했다. “아버지는 어두운 과거를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의 불행을 지워내려면 밝은 역사도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올해는 한일수교 50년이 되는 해라 신씨의 발걸음은 더욱 바쁘다. “아버지가 조선통신사 책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를 만든 것은 세상을 빨리 바꾸려면 영상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아버지의 영화가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 올해 들어 이미 부산, 도쿄, 제주도, 서울의 국회의사당에서 영화 상영회를 개최한 그는 하반기에도 기업과 대학, 문화재단 등을 돌며 상영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오션드림호(블라디보스토크)=김영화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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