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민중은 시대의 산물… 협동조합ㆍ성소수자 운동으로 분화는 당연하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민중은 시대의 산물… 협동조합ㆍ성소수자 운동으로 분화는 당연하죠

입력
2015.08.07 17:02
0 0

국내 번역 출간한 '민중 만들기' 1970~80년대 민중운동史 다뤄

이남희 교수는 지난 4일 인터뷰에서 “역사바로세우기 등 한국의 이른바 ‘역사화 작업’의 의미를 파헤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이남희 교수는 지난 4일 인터뷰에서 “역사바로세우기 등 한국의 이른바 ‘역사화 작업’의 의미를 파헤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심지어 학자들도 지금 왜 민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어요. 고리타분한 주제가 아니냐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제 책이 한국에 번역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남희(55)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아시아학 부교수는 2007년 미국에서 출간한 저서 ‘민중 만들기’(후마니타스 발행)가 최근 국내 번역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한국학에 낯선 영어권 독자를 위해 쓴 책이라 한국에선 전혀 반응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 마이클 최와 함께 서울대, 연세대 하계강좌 참석차 한국을 찾은 이 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나면 민중을 주제로 한 저작물이 한국에서도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어서 ‘민중 만들기’ 한국어판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재현의 정치학’이라는 부제와 달리 이 책은 정치학 서적이 아니라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는 역사서다. 이 교수는 서론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과 대학생에 관한 것”이라며 “이들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민중’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민중’에 대해 어떤 논쟁을 펼쳤으며, ‘민중’에 대한 자신들의 고민을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다뤘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책에서 학생운동, 마당극 운동, 지식인-노동자 연대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민중운동을 설명한다. 또 지식인들이 민중을 어떻게 대변 또는 재현했는지도 자세하게 검토했다.

정치학ㆍ사회학과 달리 국내 역사학에서 이처럼 민중이라는 주제를 꼬집어 다룬 경우는 드물었다. 이 교수는 “객관화하기엔 너무 가까운 이야기여서 아직 역사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많은 역사학자들에겐 민주화운동이 개인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학문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중학생이던 197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 교수는 시카고대에서 공부하면서 “민중운동이 한국 역사에서 엄청난 사건인데도 아무도 쓰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 논문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논문을 쓴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대학 졸업 후 국제인권단체 모임 참석 차 한국에 들렀다가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목격하고 큰 자극을 받아 소수민족과 연대하는 지역사회운동에 투신하느라 대학원 진학도 미루는 등 공부를 뒤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미국에서 한국의 민중운동을 주제로 논문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구적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고민을 거듭했다. 같은 주제로 논문을 쓰는 어려움도 마찬가지였다.

“독자와 어떤 틀로 소통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했고 악몽도 많이 꿨어요. ‘역사의 주체성’ ‘대항 공론장’ ‘지식인-노동자 연대’ 같은 개념들은 논문을 마치고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잡아 나갔어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칭송이나 신화화로 비칠까 걱정도 했죠. 비판적인 시각도 아우르며 객관적으로 조명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교수는 민중운동의 길고 복잡한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검토했고 민중운동에 참여한 많은 이들을 인터뷰했다. 자신의 언어로 완전히 소화해 풀어내기 위해 6년의 시간을 쏟아 부은 끝에 2007년 ‘The Making of Minjung’이라고 제목 붙인 책을 내놨다. 그는 “정식 교수 임명 심사에 저서를 꼭 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나마 6년 만에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웃었다.

2015년 한국을 살아가는 민중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 교수는 “과거의 민중 개념이 현재까지 존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민중의 다른 개념이 생성되고 있는 거죠. ‘협동조합’이나 ‘성소수자 운동’처럼. 그리고 그렇게 분화되는 게 당연합니다. 민중은 시대의 산물이니까요.”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