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정석 풀고 19단 외우고… 수포자 안되게 태아도 선행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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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정석 풀고 19단 외우고… 수포자 안되게 태아도 선행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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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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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의 경쟁서 이겨야 한다" 부모의 과욕에 '수학태교' 성행

억지공부로 스트레스 유발… 태아 두뇌발달에 되레 악영향

최근 중ㆍ고등학생 가운데 수학을 포기하는 이른바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증가하면서 임신부들 사이에서 ‘수학태교(胎敎)’가 유행하고 있다. 태아도 선행학습을 해야 하는 시대다.

예비엄마들이 ‘음악태교’ ‘영어태교’에 이어 수학태교에까지 눈 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가 커서 수포자가 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5월 전국 초?중?고생과 수학교사 9,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의 36.5%, 중학생의 46.2%, 고등학생의 59.7%가 ‘수학이 너무 어려워 공부를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포자의 길을 걷는 학생들이 증가하는 현실이 수학태교 열풍을 몰고 왔다.

수학태교에 나선 예비엄마들은 흔히 중학생용 수학문제집을 풀거나, 다른 예비엄마들과 스터디그룹을 결성해 수학 열공을 한다. 두 자리 수 곱셈을 빨리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인도식 ‘19단’을 통째로 암기하는 예비엄마도 적지 않다. 임신부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커뮤니티에는 “수학공부를 입덧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한다는데 저는 임신 6개월이라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요?” “수학학습지 과외를 받는 게 낫나요, EBS 교육방송을 듣는 게 낫나요?” 등 상담 글이 하루에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일부 임산부들 사이에서 ‘수학태교’가 붐이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데다 자칫 산모와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 두뇌발달에 안 좋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억지로 수학태교하면 스트레스로 부작용↑”

수학태교를 열심히 하면 훗날 아이가 수학을 잘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성이 희박하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임산부가 평소 수학을 좋아했다면 몰라도 수학과 담 쌓고 산 엄마들이 태아를 위해 억지로 수학을 공부하면 엄마는 물론 태아까지 스트레스를 받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은실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수학태교 등 원치 않는 외적 영향을 받아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증가해 태아의 두뇌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산모가 만성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출생 후 아이가 학습능력 뿐 아니라 집중력과 인지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송지은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수학태교와 태아의 수학능력 향상은 관련이 없다”면서 “수학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궁수축, 자궁경부숙화 등을 야기해 조기진통이나 조산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수학태교는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엄마와 태아를 연결하고 있는 탯줄은 혈관 이외에는 태아와 연결된 부분이 없다”고 설명한다. 산모가 태교를 목적으로 수학공부를 열심히 해도 태아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영주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생후 6개월 정도의 영아들을 대상으로 인형 개수 맞추기 조사를 한 결과 인형 개수의 변화를 감지한 아이의 경우 태교로 인해 수학적 감각이 발달했을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된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수학태교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수학태교, 태아에게 선행학습 강요하는 것

수학태교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과 과잉보상의 결과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정석 건국대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학태교는 뱃속 아이가 성장해서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선행학습을 위해 영어?수학학원을 다녀야 하는 비정상적인 교육이 태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서 교수는 또 “학창시절에 수학을 못한 엄마의 경우 자식도 자신을 닮아 수학을 못할 것이라고 과잉반응을 보일 수 있다”면서 “수학태교는 엄마의 과잉반응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귀세라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예비엄마들은 임신기간 동안 직접 만져볼 수도, 쳐다볼 수도 없는 태아에게 혹시 좋지 않은 신체적ㆍ지적 문제가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면서 “태교의 목적은 임신부들의 심리적ㆍ정서적 불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 자기와 한 몸인 아이의 환경을 온화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수학태교는 태교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과잉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차라리 꽃 이름 외우거나 가계부를 써라”

수학태교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라면, ‘똑똑한 아이’를 갖기를 바라는 부모가 기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전문의들은 이 경우 원치 않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보다 일상에서 태아의 좌뇌를 발달시킬 수 있는 생활습관을 실천하라고 권한다. 이귀세라 교수는 “좌뇌 발달을 원한다면 노래가사, 꽃 이름,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내용을 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예비엄마가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나 혹은 사람, 사물에 대한 이름을 외우는 것이 태아의 정신건강은 물론 좌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다.

임신 중 계획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도 좋다. 이 교수는 “매일 매주 매달 계획을 세워 자신이 어느 정도 실천했는지 분석하거나, 매일 가계부를 쓰면서 수입과 지출을 분석하는 등 논리적ㆍ계획적으로 일상을 보내면 태아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바흐 헨델 모차르트 등의 고전음악들은 수학을 바탕으로 창작됐기 때문에 수학문제를 푸는 것보다 이들 음악을 들으면서 심신의 안정과 태아 발달을 기대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이은실 교수는 “태아는 25주가 경과하면 제일 먼저 청각이 발달한다”면서 “소리는 인체를 타고 전달될 수 있으므로 태교로 잔잔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아무리 좋은 클래식 음악도 엄마가 듣기 싫으면 소음이 될 수 있다”면서 “트로트라도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부담 없이 즐겁게 들으면 태아에게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신재은 부천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산모가 정신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도모할 수 있다면 수학 공부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지만 유행이니까, 남들도 하니까 따라하겠다는 생각으로 과도하게 몰입해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m@hankookilbo.com

왜 태교가 중요할까

자궁 안에서 양수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라나는 태아는 쉴 새 없이 엄마의 심장 박동소리, 장 운동 소리를 듣고 산다. 엄마의 자궁은 태아를 보호하는 절대적인 환경이지만 자궁 안에도 다양한 소음이 존재하고 있다. 김영주 목동이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이 8명의 임신부의 자궁 내에 특수 수중 마이크를 부착한 후 자궁 내 음량을 측정한 결과, 자궁 밖에서는 72dB로 측정된 임신부의 목소리가 77dB로 측정됐다. 태아가 자궁 내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더 잘 듣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생아들은 태아시절 들었던 소리 종류를 태어난 이후에도 기억한다”면서 “임신 5,6개월 이후 태아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구별할 수 있어 태아가 안정적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태교가 중요하다”고 했다.

태아가 지속적으로 소음에 노출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태아는 자궁 내 양수에 둘러싸인 채 호흡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잠시 호흡을 멈춘다. 전문의들은 외부 소음이 클수록, 오래 지속될수록 태아의 호흡기능 발달이 늦어진다고 말한다.

소음은 태아의 체중에도 영향을 미친다. 태아는 외부환경으로 충격을 받으면 양수를 마신다. 한 번 삼킨 양수는 다시 자궁으로 돌아오지 않아 양수의 양이 줄어 들어 저체중아 출산의 원인이 된다. 전문의들은 “엄마의 다정한 음성은 태아의 청력계 발달은 물론 향후 사회성 및 정서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태교를 통해 몸과 마음의 안정과 긍정적인 생각, 태어날 아이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태교 템플스테이 등을 통해 태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해남 미황사 금강스님은 “태아는 엄마의 마음, 감정을 그대로 흡수한다”면서 “꽃 향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그 향기는 바람 부는 쪽에서만 맡을 수 있지만 사람의 향기는 오랫동안 사방으로 퍼지는데 바로 어머니는 사람의 향기를 만드는 사람이기에 아이를 가진 이들은 정성을 다해 태교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이귀세라 교수는 “산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남편과 가족의 사랑, 배려, 관심”이라면서 “출산이 여성 본연의 의무라 해도 첫 임신일 경우 어떻게 태교를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기에 남편과 가족의 절대적인 지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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