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때 기생학교서 전통춤 입문… 평생 승무ㆍ살풀이춤 등 19종 섭렵
손수 재봉질한 의상 입고 무대 올라
한국 전통춤의 전설인 우봉(宇峰) 이매방(李梅芳) 명인이 7일 오전 9시 22분에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화재청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 명예보유자 이매방씨가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88세.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이 명인은 7세 때 목포 권번(기생조합)장 함국향의 권유로 권번학교에 들어가면서 전통춤을 배워 80년 넘게 춤 인생을 살았다. 고인의 할아버지 이대조는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鼓法)을 가르치던 명무ㆍ명고수로 이 명인은 그에게 검무, 승무, 법무를 차례로 배웠다. 이후 광주 권번의 박영구 선생에게 승무와 북을, 이창조 선생에게 검무를 사사하고 1948년 명창 임방울의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데뷔했다.
소학교 시절에는 중국 베이징 누이 집에 놀러 갔다가 중국의 전설적인 무용가인 매란방(梅蘭芳)의 춤에 빠져 매란방 조교에게 칼춤과 등불춤을 배웠다. 매란방의 이름을 따 23세에 예명을 이매방으로 지었으며, 20여년 전에는 호적 이름도 이매방으로 고쳤다. 승무와 살풀이춤을 비롯해 입춤, 검무, 장검무, 장고춤, 사풍정감, 초립동, 승천무, 대감놀이, 기원무, 보렴무, 고무, 소고춤, 사랑가, 화랑도, 한량무, 신선무, 춘향전 등 19종의 춤을 췄다.
특히 고인의 승무는 전라 지역 중심의 ‘호남형 승무’로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靜中動)의 춤사위가 인간의 희열과 인욕의 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살풀이춤은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닌 춤으로 멈춤과 고요의 단아한 멋, 정과 한이 서린 비장미를 갖췄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이 명인은 교방춤을 무대로 승화시켜 전통무용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며 “광복 이후 전통무용은 이매방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라고 높이 평가했다.
광복 이전 광대, 서당패, 권번 등으로 분류된 한국 전통춤은 광복 이후인 1962년 무형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지고, 80년대 각 대학에 한국 무용과가 개설되며 전문 교육체계로 들어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 명인의 춤은 1969년 승무로 개인 무형문화재로 첫 지정된 한영숙의 춤과 함께 한국 전통춤을 고급화, 전문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중부권에 근간을 둔 한영숙류가 정갈하고 단아한 멋을 추구한다면 광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이매방류는 섬세한 교태미가 두드러진다.
고인은 1950년대부터 군산 부산 광주 등에 무용연구소를 차려 한국춤을 전파했고, 60년대 삼고무, 오고무, 칠고무 등 북춤을 비롯해 검무, 기원, 초립동 등을 직접 창안해 독자적인 춤 세계를 구축했다.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은 “이 시대 전무후무한 춤꾼”이라며 “인간문화재 제정 이후 많은 전수자를 배출해 그들이 학계ㆍ공연계에 폭넓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의 춤을 감히 ‘한국춤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가르친 수백 명의 제자 중 상당수는 각 대학 무용과에 포진해있다. 제자인 양종승 우방 전통춤보존회 부회장(동국대 불교문화원 객원교수)은 “오른쪽으로 돌면 왼쪽 몸이 어떤 자세가 되기 때문에 이후에 어떤 동작이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셨다”며 “춤은 장단에 노는 것이라는 이유로 가무악을 총체적으로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평소 손수 재봉질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춤사위와 음악은 물론 의상도 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소품까지 직접 챙겼고, 제자들 의상까지 직접 만들어줄 만큼 열의가 넘쳤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축하공연, 98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초청 공연 등에 참가했고 84년 옥관문화훈장, 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2004년 임방울 국악상,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국회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2012년 6월 김백봉 명인과 함께 한 공연 후 건강이 나빠졌으나 회복해, 지난해 8월 제자들이 연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호남 기방예술의 전통계보를 잇는 ‘입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이 명인 춤을 잇고 있는 김명자(본명 김정수)와 딸 현주, 사위 이석열씨가 있다. 장례는 한국무용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경기 광주시 가족공원묘지.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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