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카페를 찾아 구석 자리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자면 유난히 귀에 꽂히는 테이블 담화에 마음을 팔기 마련이다. 가장 자주 경험하기로는 ‘엄마 얘기’. 이른바 학계에서 ‘모성 담론’이라 논하는 이 주제에 대해 남녀노소 모두가 할 말이 많은 듯 흥미롭고도 절절한 내용이 쏟아진다. 새로 개봉하는 드라마 두 편이 ‘엄마 얘기’라는 최신 정보도 이런 채널을 통해 얻게 된다.
유지연의 첫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는 그 항구불변 절대공감의 담화 담론 주제를 동시대 풍속도 속에 담아낸 역작이자,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랬듯 자신의 어머니께 바치는 작가의 봉헌물이다. ‘두 개의 초상화’라는 처음 제목이 암시하는 그대로 엄마의 ‘두 얼굴’을 담았다. 내레이터의 관점 또는 현실 사회제도가 요청하고 보편적으로 구현되는 ‘엄마’를 왼쪽 면에, 여성성과 자아에 충실한 개인 ‘미영씨’를 오른쪽 면에, 각각 배치하고 대비시키며 유지연 식 모성 담론을 펼쳐 나간다.
먹을 주로 쓰고 최소한의 컬러를 더한 ‘엄마’ 모습은 아크릴화를 그려 필름을 뜬 다음 스크래치 기법을 더한 판화풍 이미지들로, 기쁨 없는 일상에 희생되고 소모되는 보통 엄마의 모습을 더없이 적절하게 보여준다. 그와 대조적으로 자아가 소망하고 욕망하는 대로 마음껏 삶을 구가하는 ‘미영씨’ 모습은 풍성한 채색 아크릴 그림으로 유쾌하고 발랄하게 그려내었다.
세상 곳곳에 ‘엄마 얘기’가 지천인 탓에 이 그림책 또한 건성으로 넘기면 그렇고 그런 클리셰의 나열로 보이기 십상이다. 곰곰이 들여다보고 읽어낼 수록 글과 그림이 겹치고 충돌하며 보여주는 존재와 관계의 진실이 흥미진진하게 들춰진다. 때로는 명치께 아리는 타격을 가한다. 우리 모두의 ‘엄마’가 보인다, 보게 된다!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독자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 그림책의 진정한 목표다. ‘엄마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자랑스러워 하지만, 미영씨는 내가 그린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았어요.’라고 미숙하게 투덜대는 내레이터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둘은 서로 다르게 생겼어요. 하지만 하나뿐인 우리 엄마, 미영 씨입니다’라고 혜안을 얻는다. ‘어머니와 자식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또 그래서 때로는 큰 상처를 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상처를 통해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 어쩌면 진짜 위대한 기적일 수 있다.’ (이나미 저 슬픔이 멈추는 시간)
이상희ㆍ시인(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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