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문득 바라본 가로수가 느닷없이 분명한 모양과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 보이던 나이테와 표면의 주름들 개수까지 셀 수 있을 정도. 문득 당혹스럽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익숙하게 지나던 곳이 별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느 한 때 걸어서 여길 걸을 때가 생각난다. 손을 다정하게 마주잡고, 허공에 비누거품 날리듯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걸었던 적 있다. 지금은 혼자지만, 무슨 영화 장면처럼 돌이켜지는 그 장면은 다정한 듯 매섭다. 돌연 마음이 따끔하다. 같은 공간인데, 많은 게 다르다. 우선, ‘그때’가 아니다. ‘그때’라는 건 그럼 무엇이었나. 시간은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이 사람을 돌본다고 믿는 것도 착각에 불과하다. 손잡고 대화를 나누던 그 사람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다시 보더라도, 그때 그 사람은 아니다. 시간이 주는 해갈이기도, 감옥이기도 하다. 감옥이되, 탈출구는 여럿이다. 그래서 외려 아무데도 내가 갈 길은 아니다. 문득 어떤 노래가 떠오른다. 실존하지 않는, 오로지 그때였기에 우리만의 것이었던, 그 흔한 노래가. 혼자 노랠 흥얼거린다. 아프기도 후련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은 서로를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 그 가면을 쓰고 ‘너’를 봤다고 여긴다. 나보다는 아프지 말라고, 그래서 날 안 아프게 해달라고, 널 살피기보다 나를 살핀다. 쿨하지 말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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