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52·남)씨는 2년 전 직장에서 명예퇴직하고 자택 인근에 264㎡(약 80평) 규모의 감자탕집을 창업했다. 권리금 5,000만원에 보증금 3,000만원, 시설 투자비 2,000만원 등 총 1억여원을 투자했다. 퇴직금까지 쏟아 부어 월 22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감자탕집을 운영했지만 종업원 4명의 인건비 지급도 빠듯할 만큼 어려워 첫 달부터 적자를 냈다. 결국 이씨는 1년 만에 감자탕집 문을 닫고 현재는 마트 배달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권리금을 포함한 투자금 1억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이씨는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너무 많고 투자금이 적다보니 목좋은 곳에 가게를 얻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던 같다"면서 "정부에서도 틈만 나면 자영업자들을 살리겠다고 각종 대책을 내놓지만 실제 장사를 하면서 정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 서울 화곡동에 거주하는 주부 박모(56·여)씨는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1년 전 집 부근에 옷 가게를 차렸다. 총 8,000여만원 투자금을 들여 개업했지만 가게 월세 100만원도 벌기 힘들어 10개월 만에 가게를 접었다. 박씨가 입은 손실은 인테리어 비용 등 3,000여만원이다.
그녀는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탓에 손해를 보고 일찍 가게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무분별한 창업을 경계했다.

▲ 이화여대 인근 골목에 폐업 후 가게를 비운 점포들이 방치돼 있다.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 5년 생존율 30% 미만, 생계형 자영업자의 눈물
지난해 세월호 후유증과 올해 터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영향으로 국민들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자영업자들의 폐업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자영업자 수는 546만3,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만9,000명 감소했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 연령에 돌입하면서 증가했던 자영업자 수는 이들이 자리 잡지 못하면서 2013년부터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부가가치가 낮은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경우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폐업을 선택하는 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생계형 창업 비율은 2007년 79.2%에서 2013년 82.6%로 증가했으나 창업 후 생존율은 1년 후 83.8%, 3년 후 40.5%, 5년 후 29.6%로 급감하고 있다. 10곳 중 7곳은 5년 안에 문을 닫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화여대 부근 골목상권을 확인한 결과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 등이 들어서면서 문을 닫은 의류매장과 미용실이 적지 않았다. 이대 앞에서 9년간 의류매장을 운영했던 정은애(37·여)씨는 점포정리 세일이 끝나는 대로 가게를 닫을 예정이다.
정씨는 "대형 매장이 들어서면서 몇 년 새 매출이 6분의 1로 떨어져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며 "손님들이 대형 매장으로 몰리면서 작아진 시장규모를 또 개인끼리 경쟁하다 보니 상권 자체가 무너진 셈"이라고 말했다.

▲ 이화여대 앞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정은애(37·사진)씨가 점포정리 세일이 붙어있는 가게를 바라보고 있다.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이치럼 자영업자들이 가게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매출 감소에 있다. 벌어들이는 월 매출은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게 줄었다. 소상공인 진흥공단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월 평균 매출은 2010년 990만원에서 2013년 877만원으로 감소했다. 또 지난해 자영업 가구가 신고한 월 소득은 2인 기준 86만원으로 직장인 근로자의 평균 소득(287만원)과 격차가 큰 폭으로 벌어진 상황이다.
■ 자영업자 죽어가는데...누구를 위한 창조경제?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창조경제'도 빛을 잃고 있다.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제시하지만 실효성의 한계만 드러내는 모습이다.
창조경제의 거점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난달 22일 한진그룹 인천센터를 마지막으로 전국 전국 17개 지역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들 센터는 유망 벤처그룹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핵심 산업으로 내세웠으나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때문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정치 이벤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업계를 중심으로 자영업자 대출 완화, 권리금 관련 개정 등의 사회적 안전망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메르스 여파로 경영난을 호소하는 상인들이 늘었지만 정부의 지원책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상인들은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정부 정책 자료의 경우 연합회가 나서서 조사해야만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기 부양과 관련해 지출하거나 예정중인 예산은 총 95조8,000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올 들어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부담하는 공과금이 10% 이상 인상되면서 부담만 가중된 상황이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장은 "국내 550만 자영업자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연 매출 2,400만원 미만의 간이 사업자들에게 공과금을 경감해주는 등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또한 시장 지배력이 큰 대기업들이 중소 골목상권을 무분별하게 침범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생계형 자영업자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창업 후 빚더미에 앉는 국민들이 양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메르스 사태 등으로 위축된 국민들의 기를 살리겠다며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했다. 하지만 550만 자영업자들에겐 겉만 번지르르한 생색내기용 1회성 이벤트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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