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후텁지근한 8월 염천 아래 무궁화 꽃이 선연하다. 6월 중순부터 10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무궁무궁 피고 진다. 전체 개화 기간이 100일 훌쩍 넘지만 꽃송이 하나 하나는 원추리처럼 하루살이다. 이른 아침에 피어 저녁이면 진다. 바통을 이어받듯 다음날 새로운 꽃봉오리들이 꽃잎을 펼친다. 여름 내내 줄기차게.
요즘엔 무궁화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주택가 화단, 도심 자투리 공원, 빌딩 모퉁이, 학교나 관공서 울타리 등에 흔하다. 삭막한 도심 공간에서 상큼한 무궁화꽃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무궁화를 생울타리로 많이 심었다. 내 시골집 주변에도 무궁화 생울타리가 있었다. 무궁화 활짝 핀 생울타리를 따라 달리곤 했던 유년시절이 그립다. 꽃 피기 전 딱딱한 봉오리를 대나무 딱총의 총알로 삼아 놀기도 많이 했다.
무궁화 꽃 지는 모양은 참 정갈하다. 여름 한 나절을 뜨겁게 달군 해가 서산에 설핏해지면 하늘을 향했던 꽃잎들이 양산 접듯 도르르 단정하게 말려 한 순간에 떨어진다. 핀 모양 그대로 툭 떨어져 뒹구는 동백꽃 낙화처럼 처연하지도 않고, 기품을 잃고 변색된 하얀 목련의 낙화같이 지저분하지도 않다. 미련 없이 곱게 하루 생을 마감하는 무궁화 낙화를 보면서 우리네의 마지막도 저러했으면 싶다.
주변에 무궁화꽃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가지에 진딧물이 잔뜩 낀 모습 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나라꽃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고 떠받드는 게 싫다고도 한다. 요즘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궁화 근(槿)자를 트집 잡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무궁화 근자를 딸들 이름 돌림자로 썼는지 궁금하다.
올 여름엔 광복 70주년을 맞아 무궁화를 기리는 행사들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태극기와 함께 무궁화를 겨레 얼의 상징으로 삼아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 선열들의 치열한 삶을 숙연하게 되돌아 보게 된다.
그런 의미 부여를 떠나서도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꽃이 무궁화다. 비 그친 뒤 물방울을 머금은 순백색 배달계 꽃을 보다 숨이 멎을 뻔 했던 적이 있다. 늦은 봄 무리 지어 핀 흰철쭉이 요염하게 예쁘지만 순백색 무궁화에는 못 미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꽃 모양과 색깔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피는 무궁화는 150여 종류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크게 나누면 단심계, 배달계, 아사달계 세 종류다. 단심계는 꽃 안쪽 아랫부분에 붉은 단심(丹心)이 있고, 배달계는 단심 없이 순백색이다. 백의, 배달민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품종이다. 아사달계는 단심 있는 흰꽃인데, 꽃잎 군데군데 분홍 얼룩무늬가 있다. 단심계는 다시 꽃잎이 붉은 색조인 홍단심계, 푸른색이 도는 청단심계, 하얀 백단심계로 나뉜다.
요즘엔 홍단심계를 붉은 색조가 강한 적단심과 보랏빛에 가까운 자단심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식물학자들이 끝없이 신품종을 개발해내고 있지만 대개는 이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암ㆍ수술을 변형시켜 장미처럼 만든 겹꽃도 있다.단심계 무궁화는 꽃 안쪽 단심으로부터 붉은 줄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방사맥이 있다. 마치 아침 태양에서 햇살이 퍼지는 모양 같다. 들여다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 무궁화는 아욱과 무궁화속 식물인데 학명이 Hibiscus syriacus다. 식물분류학상 속(屬)명인 Hibiscus는 고대 이집트 미의 여신 Hibis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무궁화는 이름부터 아름답도록 운명 지워진 꽃인 것이다.
그런데 종(種)명이 syriacus인 게 특이하다. 원산지가 시리아, 중동지방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무궁화는 일반적으로 인도와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더 근원적으로 중동지방에서 유래했다는 것일까. 무궁화의 영어명이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는 것도 재미있다. Sharon은 이스라엘 북서쪽,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활한 벌판이다. 그 벌판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샤론의 장미가 구세주 또는 예수를 의미한다. 이런 점들을 엮어 고대 우리민족이 이스라엘 지역의 한 족속(특히 이스라엘 12지파 중 단·Dan 지파)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수긍하기 어렵지만 한반도에 자생지가 없는 무궁화의 전래 과정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어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이 땅에 원래부터 자생하지 않았으니 아득한 먼 옛날 어느 개인 또는 어떤 집단이 들여와 퍼뜨린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문헌상으로 기원전 3~4세기 경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신화ㆍ전설 지리지 산해경(山海經)에 처음으로 우리민족과 무궁화를 관련 지은 대목이 나온다.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이 당(唐)에 보낸 외교문서에 근화향(槿花鄕)이라고 언급하는 등 우리나라를 근화향 또는 근역(槿域), 즉 무궁화의 나라로 지칭한 것은 역사가 꽤 깊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오얏꽃 이화(李花)를 왕조의 문장으로 삼는 바람에 무궁화가 뒷전으로 밀렸다고 한다. 그러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로 본격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구한말 개화기부터다. 개화파 선진 인사들인 윤치호, 안창호, 남궁억 등은 밀려드는 외세의 압박에서 민족 자존심을 드높이고자 무궁화를 배달겨레의 상징화로 삼았던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할 때마다 “우리 무궁화 동산은…”하는 대목에서는 늘 주먹을 불끈 쥐고 연단을 강하게 내려치곤 했다고 한다. 애국가 후렴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넣은 것은 윤치호로 알려져 있다.
한서 남궁억은 한일합병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선대의 고향인 강원 홍천 보리울 마을로 낙향해 교회를 세우고 후진 양성 교육과 무궁화 보급에 힘썼다. 무궁화 묘포에서 기른 수십만 주의 묘목을 전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뒤늦게 그의 무궁화 보급 운동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독립운동임을 알아챈 일제는 무궁화 묘목 8만주를 뽑아 불태웠고, 남궁억 등 관련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다. 바로 일제 강점기의 무궁화 사건이다.
강원 홍천군은 남궁억 선생의 애국활동을 이어받아 무궁화 마을을 조성하고, 도로변 등 군내 곳곳에 무궁화를 심고 있다. 이제 무궁화 하면 홍천군을 떠올릴 정도이고, 여름 휴가철에 꼭 들러 볼 만한 명품 관광자원이 됐다.
무궁화 종류 중에 미국 하와이 주화(州花) 인 하와이무궁화(Hibiscus rosa-sinensis)가 있다. 따뜻한 기후 지역에 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 많이 키운다. 남해안과 제주도 일대에 자생하는 황근(黃槿ㆍHibiscus hamabo)도 무궁화 일종이고, 부용꽃(Hibiscus mutabilis), 닥풀(Hibiscus manihot) 역시 꽃이 아름다운 무궁화속 식물들이다. 더 먼 친척으로는 아욱과의 아욱, 접시꽃, 목화 등이 있다.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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