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현대그룹과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은 공통점이 적지 않다. 갑작스러운 인사가 발단이 됐고, 고령 창업주의 친필문서와 육성녹음이 동원됐다는 점도 그렇다. 타협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상대방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내가 죽는 싸움이므로. 후계자는 단 한 명만 용인된다. 게다가 다른 재벌가의 제3, 제4의 ‘형제의 난’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현대그룹 ‘형제의 난’을 돌이켜 보면 롯데그룹 사태의 향방을 어렴풋이 점쳐볼 수도 있겠다.
▦ 정몽구(MK)ㆍ정몽헌(MH) 공동회장 체제였던 현대그룹 ‘형제의 난’은 1999년 12월30일 MH진영의 박세용 구조조정본부장이 현대자동차 회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시작됐다. 이에 MK진영은 MH의 핵심 가신이던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시키며 맞받아쳤다. MH진영은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을 동원, MK를 공동회장에서 끌어내렸다. 이후 MK, MH진영은 정 명예회장의 친필사인과 육성녹음을 언론에 공개하며 사투를 벌였고, 정 명예회장은 ‘3부자 동반퇴진’을 전격 선언했다. MK를 경영에서 배제시키는 조치였다.
▦ 위기에 처한 MK는 현대차 계열분리를 서둘렀다. 정부도 현대그룹의 부실이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MH진영에 계열분리를 압박했다. 그룹의 부실을 현대건설 쪽으로 몰았고 2001년 현대건설을 채권단 관리로 넣어 회생시켰다. 덕분에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은 부실을 털어내고 ‘클린 컴퍼니’로 거듭났다. 당시 김창근 SK구조조정본부장(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사석에서 “누군가 하늘에서 그랜드 디자인을 한 것처럼 완벽히 계열분리가 됐다”고 감탄했다.
▦ 롯데도 초기 진행상황이 유사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을 동원해 갑작스런 인사발령을 낸 것이나, 신 총괄회장의 친필문서와 육성녹음이 등장한 것이 그렇다. 반면 이번 사태로 롯데는 풍전등화 신세가 됐다. 정치권은 물론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했고, 소비자단체는 불매운동에 돌입했다. 롯데는 최종 결판을 주주총회로 미루고 있으나 반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벌의 썩은 속살이 후계자 갈등으로 세상에 민낯을 드러냈지만, 이를 계기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을 방안이 나오거나, 재벌개혁의 실마리가 풀린다면 해피엔딩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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