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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폭염이 지배하는 사회

입력
2015.08.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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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공원 앞 도로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시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공원 앞 도로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시스

흥미를 끌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미래 사회를 밝은 유토피아로 그리는 영화보다는 우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로 그리는 영화의 수가 훨씬 많다. 가깝게는 올 상반기 흥행돌풍을 일으킨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부터 ‘터미네이터’ 시리즈, ‘2012’, ‘가타카’, ‘매트릭스’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들 영화의 상당수는 공상과학에 기대고 있다. 발달한 과학과 초라해지는 인간 사이의 갈등 구조가 뼈대다. 그러나 이들 영화가 공포스럽기 보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현재 과학기술이 영화에서 나오는 수준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이 영화들이 지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위기는 다른 곳에 있다.

연일 수은주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은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이후 76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어가고, 연일 폭염특보가 쏟아진다. 가축들이 집단 폐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폭염은 하루 평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을 말하는데, 1981~2005년 사이에 평균 11.2일이던 폭염일수가 2010~2014년 사이에는 12.7일로 늘어났다.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경우 21세기 후반까지 폭염은 계속 증가해 연평균 31.9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게 기상청 예상이다. 그 사이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11.3도서 17.2도까지 상승하고, 연간 열대야일수 역시 2.6일에서 39.8일로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야말로 ‘잠들지 않는 대한민국’이다.

폭염은 단순히 더위에 지쳐 사회적 능률이 떨어지고, 식량 생산성이 나빠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2012년 미국 예일대 조사팀이 한국 대도시 7곳을 조사한 결과 여름철 폭염이 2일 정도 지속되면 사망자가 평균 13.5% 정도 늘어난다고 보고했다. 1800년대 초중반 이후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2003년 유럽 폭염 당시에 3만5,000여명 가량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2010년 러시아 서부를 강타한 폭염으로 1만5,000명이 숨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 폭염으로 무려 3,4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났다.

폭염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불평등까지 야기한다.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저소득층이다. 집은 노후되어 자연의 공격에 전혀 방어막이 되지 못하고, 경제적 여력이 없어 폭염에 대비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여름철 쪽방촌을 가보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의 열기로 체감온도는 실제보다 훨씬 높고, 더위에 지쳐 쓰러진 사람들은 차마 보고 있기 힘든 수준이다.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도 높아 냉방기를 가동하기는커녕 선풍기조차 없는 집이 수두룩하다. 누군가에게는 폭염이 그냥 ‘더운 여름날’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힘겹게 버텨야 하는 ‘생사의 문제’다.

이런 상황은 핵전쟁이 일어났거나 자연재해로 지구환경이 완전히 파괴된 후를 그리는 영화들에서 그린 수라도(修羅道)와 유사하다. 전쟁이나 폭력처럼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폭염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단일 원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요소 중 하나다. 로봇의 침략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이런 폭염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무섭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은 폭염 속에서 낮잠 즐기듯 하다. 폭염특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폭염에 관한 사회적 대책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저소득층이 전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전기요금 일시 할인 대책이라는 썩은 당근만 내놓았을 뿐이다. 에어컨을 더 틀면 요금을 깎아주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에어컨 팡팡 나오는 건물 안에 있더라도 이 더위에 고통 받는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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