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엄중한 역사 앞에서… 격랑 몰아칠수록 희망을 상상하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엄중한 역사 앞에서… 격랑 몰아칠수록 희망을 상상하자

입력
2015.08.06 14:45
0 0

나라 잃은 조선인 정착했던 마을엔 지금도 서울거리 지명 남아 있어

파국 받아들이는 건 현명하지 않아, 공존의 바다로 나아갈 길 찾아야

피스&그린보트에 참가한 시민들이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 부근에 전시된 2차대전 참전 잠수함 앞에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피스&그린보트에 참가한 시민들이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 부근에 전시된 2차대전 참전 잠수함 앞에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8월 2일 저녁 7시, 부산 국제크루즈터미널을 출발한 피스&그린보트는 꼬박 하루 반나절 동안 동해를 항해해 4일 오전 8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도착했다. 이슬비가 떨어지는 데크로 나가니 러시아 4대 함대 중 하나인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군항답게 정박 중인 군함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극동에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가 이 항구를 건설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육교를 건너가면 시베리아 횡단 철로의 동쪽 기점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이 나온다. 부동항과 동쪽 기점, 이 두 가지 사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100여 년 전, 조선인들에게 이 항구는 ‘해삼위’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국의 항구가 우리 역사에서도 중요하게 된 까닭은 1910년의 국권 상실 때문이다. 이후 이동휘 홍범도 최재형 등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활동한 애국지사가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안중근은 인근 여러 나라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안중근은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무르만을 건너가면 나오는 연추하리에 살면서 동지들을 규합해서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을 맺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그가 들은 곳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서쪽 언덕에 자리했다던 신한촌은, 그 이름에 국권 상실의 정황이 담겨 있다. 150여 년 전, 생계 목적으로 바다를 건너온 조선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구한촌이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은 뒤에는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찾아와 조선인 어부들이 살던 마을 근처에 정착하니 거기가 곧 신한촌이다. 그 자리에는 지금 서울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그 사실을 증언하지만, 조선인들이 살던 흔적은 그것뿐이다. 1937년 조선인들이 일본과 결탁할 것을 우려한 스탈린이 연해주에 살던 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애써 신한촌이 있는 서쪽 언덕을 찾지 않는다면, 블라디보스토크의 관광지라면 혁명광장이나 독수리전망대, 혹은 아르바트 거리가 될 것이다. 인구 50만 명이 넘는 도시라면 러시아 어디에서건 타오른다는, 꺼지지 않는 불꽃 옆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을 14척이나 침몰시켜 영웅 잠수함이라는 칭호를 얻은 S56이 전시돼 있다. 잠수함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 승조원들의 사진, 기관총, 수첩 등 전시물품들과 함께 실제 내부시설을 그대로 접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몇 달 전 전승 7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해 전쟁의 역사를 현재 시점에서 다시 소환했다. 물론 방점은 ‘전승’에 찍혔다.

그러나 러시아가 아무리 전승 70주년을 말한다고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심지인 혁명광장에 서면, 어쩔 수 없이 전쟁은 오래 전의 일이 되고 만다. 내가 10년 전 찾았을 때만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는 보수되지 않은, 소비에트 시절의 낡은 건물과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남자들로 어둡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르마니, 자라, 망고 등의 브랜드숍이 늘어선 거리로 금발의 젊은 여인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 여느 유럽의 도시와 다르지 않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루스키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다. 2012년 아셈회의(아시아?유럽정상회의)를 맞아 건설한 이 다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새로운 지정학적 의미를 말한다.

새로운 지정학적 의미는, 아마도 동해를 공존의 바다로 바라봐야만 한다는 걸 뜻하리라.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를 접한 한국, 북한, 러시아, 일본, 중국은 지난 세기 전쟁의 당사자들로 역사에 참여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건 피스&그린보트가 동해를 항해하며 여러 도시를 방문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선상에서는 ‘고향의 봄’, ‘후루사토’ 등 한일 각 나라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가벼운 행사에서 해방 이후 7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한일공동 심포지엄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그리다’에 이르기까지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다양한 선내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개인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되돌아가서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역사는 엄중하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재해석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 일은 온전하게 우리의 몫이다. 한 곳에 머물며 증오를 계속 키울 것인가, 아니면 공존의 바다로 나아갈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해야만 한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거칠기만 하고, 그런 순간에는 파국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한 판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순순히 파국을 받아들이는 게 전혀 인간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금방 밝혀진다. 격랑이 몰아치면 몰아칠수록 오히려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희망을 상상하는 일이다. 바보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적일 것. 어떤 순간에도 희망에 대해서 말할 것. 평화를 끝까지 잃지 않을 것. 광복 70주년을 맞은 피스&그린보트의 데크에 서서 쉼 없이 출렁이는 동해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그렇게 나는 평화를 생각한다.

소설가 김연수.
소설가 김연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