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강의를 하면서 종종 ‘이 직업으로 먹고 살려면 품위유지비가 꽤 들겠다!’는 생각에 빠진다. 패션을 인문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가르치는 나조차도 몸이라는 자본을 가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강의를 통해 영혼의 근육을 키우라고 아무리 말해도, 결국 패션계 강사다운 신체형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원성만 듣는다. 최근 다이어트로 7㎏을 뺐는데도, 백화점의 남성복 매장 내 마네킹을 보며 한숨을 쉰다.
우리들은 무의식 중에 패션매체가 주입시킨 자칭 ‘표준적 신체’를 정상으로 받아들인 후, 자신의 몸을 학대한다. 우리의 신체이미지는 사회에서 유통되는 시각적 이미지들과의 지속적인 만남과 협상을 통해 만들어진다. 신체가 지닌 욕구를 시각언어로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패션매체다. 마네킹, 패션화보, 패션모델 등이 포함된다.
이중 마네킹은 의복 이상의 가치를 갖는 발명품이다. 마네킹은 패션의 변화를 반영하며 문화적 조류와 가치관, 성 역할과 미적 기준, 적절함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1898년에는 정숙한 여인(Miss Modesty)이란 이름의 마네킹이 만들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머리는 아래로 내려뜨린 모습이었다. 이 마네킹은 당시 여인의 허리를 16인치로 졸라맨 코르셋을 입고 있었다. 당시 유럽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성 역할, 정숙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몸으로 체현한 것이었다.
마네킹은 패션처럼 사회와 경제, 문화의 거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마네킹의 다리부분은 유독 짧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당시 여성의 키가 작아서가 아니라, 배급에 의존한 물자결핍이 만연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1960년대에는 젊은 미국의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를 모델로 마네킹을 제작했다. 유리섬유로 만든 그녀의 이미지는 국가 이미지 마케팅과 맞물리며 33개 국가에서 판매되었다. 1960년대에 일어난 미국 사회 내부의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을 마네킹을 통해 표현했다. 당시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자연스러운 체형의, 다양한 가슴 크기를 가진 마네킹도 나왔다.
마네킹은 수 세기에 걸쳐 인류를 매혹했다. 1923년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기원전 135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투트(Tut) 왕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절대권력 파라오 옆에는 실물 크기의 나무 인형이 놓여있었다. 왕의 가슴 옆에 누워 왕의 옷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계 최초의 마네킹이다. 로마 황제 네로의 아내는 자신의 모습을 본뜬 인형을 만들어 자신이 고른 옷을 입혀 평가하곤 했단다. 마네킹은 인간의 신체를 재현하는 이미지다. 마네킹을 제조할 때 신체 곡선 비율, 포즈와 가슴의 풍만함, 유행 의상 등 동시대 유행 이미지를 정교하게 파악한 후 형태로 옮긴다. 결국 그 시대의 이상적인 신체형의 표현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런 여성의 신체는 감추어지고 새롭게 부상하는 신체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여자의 몸은 에로틱한 대상이 될 뿐이다.
국내 여성복 마네킹은 다리가 하나같이 길쭉하고 말랐다. 키 178㎝, 가슴둘레 81.3㎝, 허리둘레 58㎝, 엉덩이둘레 83.8㎝를 표준 체격으로 설정한 탓이다. 이건 실제 한국 여성의 신체표준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기술표준원의 '한국인 표준 사이즈'를 보면 20대 여성의 평균 신체 치수가 키 160㎝, 가슴둘레 82.2㎝, 허리둘레 67.3㎝, 엉덩이둘레 90.8㎝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커도 너무 크다. 패션 매장은 패션쇼 모델과 유사한 비율의 마네킹을 비치한다. 서구의 전문 모델들 중 거식증 환자 비율이 10% 후반이다. 평균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는 먼 마네킹을 써온 탓에 외국에선 국민들의 건강권 침해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고, 여성단체의 저항이 줄을 잇는다.
최근 스웨덴과 영국의 백화점에서 보통 여성의 신체 사이즈를 재현한 실물 마네킹이 등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덤으로 노년의 이미지를 가진 마네킹도 등장했다. 다양한 형태와 사이즈의 몸을 보여준다는 것은, 한 사회 내부에서 ‘인간의 몸’을 둘러싼 진정한 관용의 정신을 발아시키겠다는 시도다. 다양함이 곧 ‘시크(Chic)’의 기준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패션계는 지금부터 준비하라.
김홍기·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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