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년을 맞지만 진정한 지방자치로 가는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1995년 민선자치가 시작된 이래 ‘2할 자치’, ‘반쪽 자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세 대 지방세 비중은 여전히 8대 2의 열악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재정자립도 또한 최근 20년 새 44%에서 25%로 반 토막 났다. 자치단체는 상위 법률의 근거 없이는 어린이 안전이나 주차장 운영 조례 하나 제정할 수 없다. 지방자치와 지방 분권을 전담하는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중앙을 설득하지 못하고 지방의 지지를 받지 못함으로써 동력을 잃었다.
그러면 지방 정치는 어떠한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의 지방 정치는 중앙 정치에 철저히 예속되어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이며 거의 고사 직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중심에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 출마 후보자를 낙점(공천)하는 ‘정당공천제’가 자리 잡고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이 현실이다 보니,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은 국회의원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지방선거에서 공천 비리 내지 돈 추문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실제 지방선거에서 지방은 없고 오로지 정권 심판론 등 중앙 정치의 구호만 난무한다. 이러한 정당 공천제의 부작용과 폐해로 지방자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금까지 정당 공천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폐지하자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 결과 국민의 60~70%가 정당공천제 폐지를 찬성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 공히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정치 쇄신 공약으로 채택한 바 있다. 이후 어느 당이 당론으로 정했는가 하면 또 다른 당은 당원 투표까지 해서 이 공약을 뒷받침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볼 때 중앙 정치권도 정당공천제가 긍정적 측면보다는 문제점과 폐해가 더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껏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정당책임정치, 위헌성 문제, 소수(여성) 참여 제한 등을 이유로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앙 정치권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요즘 각 정당들이 이른바 선거제도 혁신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현역 의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주장하거나 기초단체장의 공천권을 중앙당에서 도당으로 이관하자는 등 궁색하기 그지 없다. 그 기득권을 내려 놓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모양이다.
정당공천제 폐지의 대안으로 ‘정당임의표방제’가 큰 틀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지방선거 출마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표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유권자는 후보자에 대한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 후보자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정당은 이에 관여하지 못한다. 또 다른 대안은 당내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정당 공천을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이다. 이 안은 정당의 정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에 따른 위헌성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제 정당 공천이라는 족쇄를 풀어 지방 정치를 주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즉시 폐지하여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중앙의 구호가 아닌 지역 이슈가 지방 정치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정당 공천 폐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살리고 생활자치로서 책임 행정을 구현하며 내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성공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방 분권의 발전은 시대정신이고 민심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조충훈 순천시장ㆍ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