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초 인성교육진흥법 시행 앞두고
취지에 안 맞는 학교 프로그램 많아
전문가들 "인실련 인증 독점이 문제"
부산의 한 중학교가 지난 2013년부터 1년 간 교내에서 시행한 독서프로그램‘글벗 가꾸기’는 지난해 초 교육부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증을 받았다. 학생들의 올바른 인격과 정서를 함양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공식적 인정을 받은 셈. 입학 초 학생들이 3년 간 읽고 싶은 도서 100권을 선정한 뒤 학교가 독서시간을 제공하고 시 낭송대회 등을 개최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과 ‘인성교육’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독서와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연계하는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의 한 교사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만 강조하는 프로그램인데 어떻게 공식 인증을 받았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고 말했다.
내년 초로 예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정부의 인증을 받은 기존 인성교육 프로그램 중 상당수가 ‘인성 함양’이란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은 심각해지는 청소년 범죄의 주된 원인이 인성교육 부족 때문이라는 인식에 따라 관련 교육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지난해 5월 이 법을 발의한 뒤 연말 통과시켰다. 교육부는 올 연말까지 시행규칙 등 세부계획을 마련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2013년부터 교육부의 인성교육프로그램 인증을 독점해 온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인실련)’이 인증한 프로그램들과 인성교육의 관련 여부는 의문투성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서울 한 특성화고가 시행한 ‘창의도전ㆍ인성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은 ‘직장 예절’, ‘경제야 놀자’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직장생활의 에티켓을 배우거나 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소비습관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인성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도의 한 특수목적고에서 실시한 ‘공부해서 남 주기’ 프로그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장래희망을 위해 본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동하는지를 수치화하는 ‘10대에 꿈이 중요한 이유’, 자신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나만의 비전 만들기’ 등의 강의로 구성돼 있다. 역시 인성 교육과의 연관성은 의문이다. 청소년 폭력예방을 위한 법무부의 ‘행복나무 프로그램’은 기존 일선학교의 역할놀이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인실련이 법 시행 이후에도 인증 대행기관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교총과 바르게살기운동중앙회 등 보수적인 단체의 간부들이 인실련을 이끌고 있다”며 “이변이 없는 한 정부가 이 단체에게 인증권한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인증사업비’명목으로 인실련에 연 8,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실련 관계자는 “평가 기준과 최종 인증 권한은 교육부가 갖고 있고 우리는 당국이 사전에 승인한 절차대로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사교육 업체들의 배만 불릴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인성교육진흥법 제정 이후 인성교육과 관련된 민간 자격증은 법 제정 이전에 비해 80% 가량 급증해 7월 말 현재 250여 종에 달한다. 근본적으로 인증주체인 정부가 인성교육의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윤진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적 합의가 없는 인성교육은 자칫 아이들을 ‘교화’의 대상으로만 여겨 획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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