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경삼림’을 만들 때 개봉일까지도 편집을 끝내지 못했다. 편집을 마친 부분만 우선적으로 각 극장으로 즉각 배달됐다. 교통이 막혀 최종 편집부분을 받지 못한 홍콩 외곽에 있는 극장에서 ‘중경삼림’을 접한 관객들은 결말 부분을 못 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본 영화가 완성본이라고 생각해 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영화 ‘일대종사’의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은 홍콩 유명 감독 왕자웨이는 자신의 무용담을 관객들에게 들려줬다. 완성되지 않은 영화가 상영됐는데도 별일 없이 넘어갔다고 하니 신빙성이 의심되기도 했으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있지도 않았던 시절이니 있을 만도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웨이는 자신의 예술가적 면모가 깃든 에피소드로 소개했으나 아마 제작자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일화일 것이다.
왕자웨이 스스로는 매번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주장하지만 예술영화 감독이다.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등은 흥행이란 수식을 얻지 못했다. ‘아비정전’은 국내에서 환불소동까지 불렀다. 개봉 당시 20대의 감성을 자극한 ‘중경삼림’이 그나마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다.
왕자웨이가 홍콩을 대표하는 예술영화 감독이 되기까지는 역설적이게도 홍콩영화의 지독한 상업성 덕을 봤다. 폭력집단 삼합회가 영화제작에 관여하던 홍콩영화계는 상업적 효율성을 중시했다. 암흑가는 짧은 제작기간을 원했고 배우와 감독이 목숨을 건 연기와 연출을 해내길 원했다. 돈에 대한 어두운 욕망으로 홍콩영화계는 빠르게 산업화했다. 아시아시장을 넘어 미국과 유럽까지 진출했다. 1980년대 후반 시작된 황금기로 홍콩영화계는 돈이 넘쳤고 영화 제작 붐이 일었다. 왕자웨이와 관진펑 등 예술가 성향이 강한 감독들도 곧잘 메가폰을 들 수 있었고 액션이나 코미디 일변도였던 홍콩영화에 활력이 됐다. 산업화가 만들어낸 긍정적인 효과다.
한국영화가 내달 열리는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3년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든 이후 세계 3대 영화제 어디로부터도 초청장을 못 받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두 차례 수상을 이끌어낸 이창동 감독은 제작비 확보에 애를 먹고 있고,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은 일본에서 만든 신작 ‘스톱’을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이 들린다. 충무로는 요즘 산업화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듣는다. 지난해에는 영화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 2조원대에 올라섰다. 겉만 화려하다. 산업화의 혜택이 일부 상업영화에만 돌아가는 게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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