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아베 담화에 일희일비할 것 없다

입력
2015.08.05 16:48
0 0

담화 위상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우선

명분보다 실용적 대일외교 주력해야

아베 담화 발표가 며칠 안 남았다. 담화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고, 무엇이 빠질 지가 초미 관심사다. 아베 담화를 계기로 한일 관계는 또 한번 요동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며칠 전 일본 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아베 담화가 양국 미래의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담화를 보는 우리 정부의 의중을 드러냈다.

담화라는 게 뭔가. 사전에는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안에 대해 견해나 태도를 밝히는 말’이라고 돼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의 담화라면 정부를 대신해 이해당사자들에게 하는 정치적 약속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과거 무라야마 담화나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이 한 고노 담화가 역사적으로 평가 받는 것은 정부 공식견해라는 무게감 때문이다. 그 무게감이 정권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에서 나오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베 담화는 그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역대 정권이 계승해온 무라야마ㆍ고노 담화를 부정하겠다는 애초의 동기부터 담화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설령 모호한 화법을 동원해 과거 담화의 핵심을 피해가는 꼼수를 부린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 각의 결정을 통하지 않는 총리 개인 담화로 한다는 둥, 패전일인 15일을 피해 발표한다는 둥의 얕은 아이디어 역시 담화의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사실 무라야마 담화조차 지금에 와서는 무슨 현실적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담화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한일 청구권 협정이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규명하지 못한 채 불완전하게 봉합된 이후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주장을 한치도 굽히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업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을 한사코 부인한 것이나,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한국인만 빼고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 비근한 예다.

위안부 문제도 여성에 대한 성 착취라는 반인도적 범죄 성격 때문에 보상에 성의를 보이는 것일 뿐 강제성이나 정부의 책임인정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하기야 국민 절대 다수의 반대에도 아랑곳 없이 헌법 해석마저 정권 입맛에 맞게 바꾸는 판국이니 담화 정도 뒤집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베 담화의 내용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대일외교의 원칙과 기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더 필요한 때다.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진실 규명에 정부가 정말 의지가 있다면, 그래서 아베 담화에 이 같은 핵심문구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면 담화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한일협정을 개정하는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맞다. 협정에도 조항 해석에 대한 분쟁을 외교경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눈 가리고 아웅’식의 담화 내용에 외교력을 소진할 이유가 없다.

‘아베의 책사’라고 불리는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이후 중일 간에 해빙의 기운이 일고 있다. 정상회담도 시진핑 주석의 다음달 미국 방문 이전까지는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음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전 70주년 열병식에 아베 총리의 참석을 끌어내기 위해 쏟는 중국 정부의 정성도 각별하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밀어붙이고 있는 안보법안의 타깃은 중국이다. 지난달 발표된 일본 방위백서도 중국의 위협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의 도발 수위로 보자면 우리보다 훨씬 격앙했어야 할 중국이 일본에 유화적으로 나오는 배경을 정부는 헤아릴 필요가 있다.

과거사와 안보ㆍ경제는 명분과 실리의 관계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명분을 얻어내기 힘들다면 실리라도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미국이 일본을 용인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이 가까워지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구도에 끌려 들어가는 모양새만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