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보다도 수십배 많은 고리
신격호 지분 0.05% 갖고 쥐락펴락
재벌 구조개혁의 주요 쟁점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 목소리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총수일가 지배력의 원천으로 꼽히는 순환출자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A사 → B사 → C사 → A사’로 지분이 물고 물리는 순환출자 고리는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거대그룹을 쥐락펴락하는 ‘황제 경영‘의 문제점을 극대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가 2013년말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작년 7월부터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했지만, 기존 순환출자는 그대로 인정해주면서 재벌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이 참에 기존 순환출자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올해 4월 기준으로 총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집단)의 순환출자 고리 수(459개)의 90.6%에 달한다. 제계 1, 2위인 삼성그룹(10개)과 현대차그룹(6개)보다 수십 배나 많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고작 지분 0.05%(총수 일가 전체 지분은 2.41%)를 가지고 한국 롯데그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일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같은 순환출자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 사정에 정통한 한 정부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롯데쇼핑 등 총수 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한 한 12개 핵심 계열사를 통해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 전체 계열사 81개에 대해 우호 지분만가지고 주주총회 특별 결의 의결정족수를 넘길 정도로 강한 장악력을 보이고 있다”면서 “롯데가 전체 계열사 중 8개만 상장하고 나머지는 비상장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순환출자 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1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순환출자 금지 공약을 내걸 정도로 경제민주화 및 재벌개혁의 주요 쟁점이 됐다. 당시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자는 입장을,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각각 내놨지만 결국 여당의 안이 관철됐다. “기존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대신 공정위는 매년 대기업의 순환출자 고리 수를 공시하는 방식으로 기존 순환출자 고리 감소를 유도하고 있지만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롯데의 경우 2013년 9만5,033개에 달했던 순환출자 고리를 지난해 417개로 대폭 줄였지만, 올해는 공정위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단 1개만 줄이는 데 그쳤다. 순환출자 고리가 마치 회로처럼 뒤엉켜 총수 일가의 촘촘한 장악력을 배가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1주=1표’가 아니라 ‘1주=수십, 수백표’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다른 일반주주의 의결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등 다른 재벌그룹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없애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신규 순환출자뿐만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하는 내용으로2012년 당론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법안은 2013년 6월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졌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 없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이 “지난 대선 때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되살려 당장 입법화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정치권 내에서 순환출자 금지를 포함한 각종 재벌개혁 입법 움직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순환출자에 집착하다가 재벌개혁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순환출자가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은 아니다”며 “자칫 순환출자 해소에 집중하는 경우 다른 재벌개혁 논의가 묻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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