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추모 예배ㆍ분향소 마련
"온화하게 제자 보듬어 준 스승, 폐 끼치기 싫어 홀연히 떠나신 듯"
4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 며칠 전 작고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분향소에서 추모 예배가 진행됐다.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를 부르며 시작된 예배에 참석한 100여명의 조문객들은 생전 김 교수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 더듬었다.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은 “학교로서나 대한민국으로서나 큰 별을 잃은 마음”이라며 학계의 거목을 잃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예배에 참석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김 교수는 대학 2년 후배이자 학생동아리 후배이기도 한데 나한테 절 받게 생겼다”며 “대한민국의 훌륭한 석학을 잃었지만 그가 번역한 책이나 쓴 글이 세상에 많이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신 교수는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한 고인을 성공회대에 오도록 권했다.
김수행 교수와 함께 서울대에 재직했던 동료ㆍ후배 교수들과 그와 뜻을 함께한 학계 인사들도 분향소를 찾았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은 “서울대가 변혁을 시도하던 시기 교수로 임용된 김 교수는 김세균 교수 등과 함께 서울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에서 활동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서울대 동료교수들은 그의 임용에 반대했지만, 고인에게서 경제학을 배우려는 대학원생들이 수업 거부와 농성을 불사하며 “정치경제학 전공자를 영입해달라”고 호소해 결국 학교 측이 손을 들고 말았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성진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홍기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고인의 제자들도 스승의 갑작스런 변고를 안타까워했다. 1980년대 초 서울대 대학원에서 김 교수에게 수학한 박모씨는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등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온화하게 제자들을 보듬어 준 스승”이라고 회상했다. 성공회대에서 고인의 마지막 수업인 2015년 1학기 자본론 입문 강의를 들은 박미애씨는 “학생들이 하나하나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반복하셨고 최근에도 2학기 수업에 사용할 교재를 학생 하나하나에게 이메일로 알려 주시며 미리 공부하라고 하시는 등 애정이 많으셨다”며 눈물 지었다.
조문객들은 이날 예배가 끝난 후에도 분향소를 떠나지 않고 고인의 근황과 생전 추억을 이야기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고인은 지난달 24일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 유타주를 찾았다가 일주일 뒤 심장마비로 현지에서 숨졌다. 장례는 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에서 치러졌다. 성공회대는 고인의 가족이 귀국해 추모사업을 진행하기 앞서 이날부터 7일까지 분향소를 설치ㆍ운영한다. 분향소는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운영되고 이날 오후 2시 첫 추모예배를 시작으로 매일 오후 7시 추모예배를 진행한다.
김수행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영국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신대 무역학과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8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정년퇴임한 후 지난 1학기까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석좌교수로 있었다. 국내 최초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완역 출간한 손에 꼽는 마르크스 경제학자였다. 자본론 외에도 경제학 고전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번역했고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자본론 공부’ 등 수십권의 저서를 냈다.
신정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진퇴가 분명하고 남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김수행 교수님답게 홀연히 떠나신 것 같다”며 “가족들이 귀국하면 추모사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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