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2분기 공실률 9.1%,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p 늘어
절대 안 내리던 '명목상 임대료' 1분기보다 0.1% 하락한 상황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 캐피탈타워. 6만2,747㎡ 연면적에, 전체 외벽을 통유리로 감싼 24층 빌딩이 위용을 자랑한다. 지하철 2호선 역삼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데다, 1998년부터 한솔제지 본사 건물로 쓰여 강남파이낸스센터와 함께 테헤란로를 대표했다.
하지만 로비에 각 층 입주회사를 알리는 게시판에는 4개 층이 공란으로 돼 있다. 모두 빈 사무실이다. 면적으로 따지면 약 20%가 아직 임차인을 찾지 못한 공실인 셈이다. 지난 달 30일 현장에서 만난 건물 관리인은 “작년 하반기 교보생명 등이 이전한 후 8개월 이상 이 정도 공실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는 다른 빌딩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에 위치한 그레이스타워의 경우 지난해 8월 주요 임차인이던 삼성SDS가 잠실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지상 20층 빌딩 중 16개층이 공실 상태다. 강남역 4번 출구에 있는 대륭강남타워도 사무실 주인을 찾지 못해 5개층 이상이 비어있다. 이 지역 한 부동산 중개인은 “간혹 빌딩 입주를 원하는 업체가 나타나더라도 턱없이 낮은 임대료를 요구해 계약 성사가 쉽지 않다”며 “이면도로에 있는 한 신축 빌딩은 2개층을 제외한 13개층이 임차인을 기다릴 정도로 테헤란로 오피스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오피스빌딩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광화문 종로 등 도심권역, 여의도ㆍ마포권역 등 전통적 서울 오피스 중심지구에 있는 대형 빌딩에는 빈 사무실이 넘쳐나고, 이면도로 중소형 빌딩은 절반이 공실인 곳이 수두룩하다. ‘대한민국 오피스 1번지’ 테헤란로 등 강남권역 조차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4일 부동산 투자자문사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테헤란로, 강남대로 등 강남권역(10층 이상 또는 연면적 1만㎡이상 빌딩 대상) 공실률은 2분기 현재 9.1%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2010년 2분기(4.4%)와 비교하면 5년새 빈 사무실이 2배나 늘어난 셈이다. 그 동안 강남권역은 경기둔화로 일시적으로 공실률이 급증한 적은 있으나 곧 다시 떨어져 6%대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2013년 4분기 8%대에 올라선 후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건물 가치가 하락한다는 이유로 빌딩 주인들이 절대 내리지 않는다는 ‘명목상 임대료’마저 강남권역은 전 분기 대비 0.1% 떨어졌을 정도다.
업계에서는 “굳이 강남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냉정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신규 오피스 공급이 구로, 상암, 마곡 등 곳곳에 늘어난데다, 강남 오피스만의 시너지 또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넥슨, 엔씨소프트 등 테헤란로에 입주했던 유명 IT회사들이 2013년도부터 경기 판교테크노밸리로 이전한 이후 지난 3년간 삼성엔지니어링,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솔로몬저축은행, 벤츠코리아, 신성건설, 한솔제지, 웹젠, LG텔레콤, 르노삼성고객서비스센터, 남광토건, 넥슨네트웍스 등 회사들의 탈(脫)강남 러시가 이어졌다. 안민석 FR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강남지역이 최고의 임대료를 보이는 반면 구로, 판교처럼 업권 특색이 강하지 않다는 점도 임차인이 떠나는 요인”이라며 “IT업체는 판교에 집중된 반면 다른 회사들은 서울 전역으로 분산되고 있어 전통적 사무실 밀집지역 수요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통적 오피스 타운 역시 임차인들의 이탈이 급증하고 있다. 공실률이 서울지역 평균인 9.7%를 넘어서는가(도심) 하면, 2012년부터 8~11%대 공실률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곳(여의도ㆍ마포)도 있다. 오피스빌딩의 주요 고객인 기업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용 절감에 나섰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사무실 수요는 줄어든 반면, 공급은 꾸준히 늘어난 영향이다. 심영선 알투코리아 연구원은 “2분기 서울에 공급된 오피스 약 20만㎡ 중 16만㎡는 시장에서 흡수하지 못했다”며 “작년 4분기 이후부터 신규 공급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공실률은 매 분기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늘고 수익률(1분기 1.76%→2분기 1.73%)도 줄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가의 임대료는 유지되고 있다. 빌딩 주인들이 임대료를 낮추기보단 ‘렌트프리(연 2개월 이상 무료 임대)’ 등의 조건을 내걸기도 하는 탓이다. 아예 임차인들이 월세 대신 전세를 요구하면 못내 받아들이고 이 사실을 극비로 하기도 한다. 빌딩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게 알려지면 그 만큼 재산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피스 시장에 그 만큼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장진택 리맥스 코리아 이사는 “저금리 시대라 빌딩 인기가 높다 보니 잘못된 수익률을 기반으로 한 거래가 이뤄지는 게 사실”이라며 “수급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추후 시설이 좋은 A급 오피스에만 임차인이 몰리고 입지가 나쁘거나 노후된 B, C급 빌딩은 철저히 외면 받아 오피스 시장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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