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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약혼남의 폭력성을 목격했는데…

입력
2015.08.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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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른 살 여자입니다. 지난 5월쯤에 한 남자를 만났고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채로 결혼하자는 말을 듣게 됐어요. 딱히 제가 바라던 남자도 아니었고 만난 지 얼마 안됐는데 급하게 프러포즈를 하는 모양새가 맘에 들지도 않았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는 애정공세에 '아, 이 사람이 맞나 보다'하며 결정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제 다음달 말이면 결혼식입니다. 하지만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얼마 전 그의 친구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기분이 좋았는지 꽤 술에 취해 돌아가던 길에 행인과 부딪히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는 거예요. 택시를 타고 나서도 택시 아저씨에게 욕을 해대는 바람에 이만저만 곤란한 게 아니었죠.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저에게도 욕과 함께 주먹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어요. 그는 다음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앞으로 절대 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결혼 후에도 이런 모습을 본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결혼,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요?

술 취한 채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던 약혼자. 정작 술이 깨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게티이미지뱅크.
술 취한 채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던 약혼자. 정작 술이 깨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게티이미지뱅크.

A 결혼에 대해 지겹도록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는 아마 '결혼해서 살아봐라, 다 똑같다' 라는 말이 아닐까요. 결혼 전엔 그토록 많은 이들이 서로에게 로맨틱한 약속 뒤에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숨기지만, 막상 결혼해 많은 것들이 익숙해지고 나면 예전에 숨기던 모습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혼 후에 다 똑같다는 건, 결혼이 대단한 장치라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익숙하고 가까운 존재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단점을 더 드러내게 되는 자연스런 과정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단점을 드러내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 꼭 부정적으로 기능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장점에 매료되어 시작한 연애라도, 상대방의 단점까지 끌어 안는 순간 더 깊어지기도 하니까요. 처음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방의 어떤 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것이 되려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자신의 성장을 가져오기도 하고요. 우리는 모두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사는 건, 그리고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 단점이라는 것이 '술을 마시면 심각한 수준의 언어폭력과 경미한 수준의 물리적 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사자 혼자서만 갖고 있는 특성이 아니라 주변 사람(아마도 결혼 후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많이 경험할 것이고요)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이 사연을 보낸 당신의 마음 속에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이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겁니다. 이건 짧은 연애기간 때문에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 사람의 특성이고, 이것이 당신을 괴롭게 만들 거라는 걸요. 만약 결혼 날짜가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당신은 이 남자와 당분간 만나긴 만나더라도 또 폭력적인 성향이 어떤 식으로 분출되는지 지켜보기라도 하려고 했을 거예요. 하지만 결혼이 목전에 있다는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게 하죠. 현실적으로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 이야기가 알려진 데다, 양가 부모님 인사까지 드리고 모든 일상이 결혼식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흐름을 멈춘다는 건 당신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한 혹은 부정적인 반응을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결혼식 직전까지 갔다가 엎었다잖아~"라며 수군대는 입방아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음주 후 폭력은 위험한 징조다. 하지만 그런 남자를 택하든 택하지 않든 모든 결정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음주 후 폭력은 위험한 징조다. 하지만 그런 남자를 택하든 택하지 않든 모든 결정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어떤 누군가를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당신의 행복을 위해 결혼한다는 사실 말이예요. 상대방의 단점도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아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결혼을 해도 수월하지 않은 것이 결혼생활이잖아요. 당신에게 물을게요. 당신은 술을 마시면 폭력성이 발현되는 사람을 아끼고 신뢰할 자신이 있나요? 그 사람과 행복할 자신이 있나요? 아,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요? 술을 마시면 갑자기 돌변해 주먹을 휘두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음 번에 술을 마셨을 때 또 돌변해 주먹을 휘두를 수 있어요. 대부분의 가정폭력이 상습적으로 행해지는 것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죠. 첫 폭력의 징후, 그건 수면 위에 떠있는 작은 얼음덩어리 같은 것과 같아서 그 아래에 거대한 빙산을 숨겨져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별거 아니야, 다신 안 그럴게'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아래에 느껴지는 거대한 폭력성이란 빙하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설득시킨다면 결국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신 밖엔 없죠. 술만 안 마시면 괜찮은 사람이라고요? 어쩌죠, 세상엔 술을 마셔도 괜찮은 사람도 정말 많이 있는데. 굳이 그런 사람을 당신이 감당하겠다고 하는데 그걸 누가 말릴 수 있을까요. 다만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 스스로를 존중하는 선택을 했으면 해요. 부모님도, 친구들의 눈치도 보지 말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을 하길 바랄게요. 결혼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지만,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은 결혼을 굳이 진행시켜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도 세상엔 없답니다.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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