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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롯데의 ‘국적’이 뭐 그리 중요할까

입력
2015.08.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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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2015년 8월 3일 현재 롯데케미칼, 롯데칠성 등의 주식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롯데가 한국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에 말이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한 아주머니는 이제 롯데백화점도 이용하지 말자고 결의하셨다.

그런데 난 “롯데가 한국기업이 아니어서 실망이다”라는 말이 왜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두 가지가 다 이해하기 힘들다. 첫째 한국기업이 아니라는 점, 둘째 실망이라는 점. 내게는 여전히 한국기업처럼 느껴지고, 설령 한국기업이 아니더라도 나로서는 딱히 실망할 점도 없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 싼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후계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3일 오후 서울 명동 롯데그룹 본사 입구에서 직원들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왕래하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 싼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후계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3일 오후 서울 명동 롯데그룹 본사 입구에서 직원들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왕래하고 있다. 연합뉴스

먼저 롯데가 왜 일본기업이라는 것인가? 아니 바꿔 질문하자. 한국기업인지 일본기업인지를 무엇으로 구별해야 하는가? 롯데가 일본기업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호텔롯데의 주요주주가 일본롯데홀딩스라는 일본기업인 점을 근거로 삼는다. 즉 주주의 국적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롯데홀딩스의 주요 주주는 또 광윤사이고, 광윤사는 바로 롯데 일가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윤사는 포장재를 만드는 자그마한 회사로서(무슨 만화영화 같지 않은가? 롯데라는 83조원 규모의 엄청난 크기의 상자 껍데기를 벗기고, 벗기고 들어가보면 그 중심에는 광윤사라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상자가 놓여져 있는 느낌이다), 비상장회사이다 보니 지배구조가 베일에 싸여 있기는 하다. 그런데 풍문으로는 광윤사 지분을 신동주, 신동빈, 시게미쓰 하쓰코(신동주, 신동빈의 모친), 신격호 씨 등이 20% 정도로 나누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한국, 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는 바로 롯데 일가 개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시게미쓰 하쓰코만 제외하면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다(신동주, 신동빈씨는 이중국적자였으나 1990년대에 일본국적을 포기했다).

말인 즉슨, 주주의 국적이 그 기업의 국적이라면 롯데그룹의 지주회사(호텔롯데)의 주주(일본롯데홀딩스)의 주주(광윤사)의 주주는(헥헥 숨이 차다) 한국인들이므로 롯데그룹을 여전히 한국기업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롯데가 한국에서 거느리고 있는 계열사가 80여개이고 직간접 고용인력이 20만명이다. 그 20만명만큼의 고용을 만들고 가계소득을 올려주는 장소가 바로 한국이다. 22%의 법인세를 납부해야 하는 장소도 바로 한국이다. 남은 이익으로 투자를 하는 장소도 한국이었다. 그 덕에 한국롯데의 규모가 일본롯데보다 매출액 기준으로 13배나 커졌다. 그래도 남는 돈이 있으면 일본 기업이 배당이익을 가져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선 롯데는 배당을 적게 하기로 유명하다. 그간 워낙 해외 투자 실패를 많이 해서 배당잔치를 벌일 만큼의 돈도 쌓아놓지 못했다. 무엇보다 일본기업에 배당을 한다 한들 결국 그 최정점에서 최종적으로 배당을 받아갈 주주는 대체로 한국인들이다.

비록 한국말이 좀 서툴기는 하지만, 엄연히 국적은 한국인이다. 따라서 그렇게 취득한 배당액을 합해 롯데 일가가 소득세를 내야 하는 곳도 한국이다.

따라서 내게는 롯데가 일본기업이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다.

신동주(왼쪽) 일본롯데 전 부회장과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 형제. 한 사람은 일본어로, 또 한 사람은 한국어로 인터뷰를 하며 묘한 경쟁을 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동주(왼쪽) 일본롯데 전 부회장과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 형제. 한 사람은 일본어로, 또 한 사람은 한국어로 인터뷰를 하며 묘한 경쟁을 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음으로 설령 일본기업이라 한들, 일본기업이란 사실에 왜 그리 배신감을 느끼고 실망하는 것일까? IMF 후 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세계를 돌며 우리나라에 투자해 달라고 그토록 사정하고 다니셨다. 이제는 아프리카나 동남아 국가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자국에 대한 투자를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다. 남의 나라 기업에게 부디 우리나라에 와주십사 부탁하는 이유는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용을 창출해주고, 사회간접자본투자에 도움이 되고, 세금을 내주고, 재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거시경제지표로 국민총생산인 GNP가 아니라 국내총생산인 GDP를 사용하기 시작한 게 1994년이다. 즉 그 회사가 어느 나라 사람 것이냐 하는 것보다는 그 회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게 된 지 오래이다.

그런데 롯데는 한국사업을 더 중시하고 있기에 신동주, 신동빈 회장도 국적을 한국으로 택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한국 투자액을 늘리는 바람에 일본 쪽을 맡고 있던 신동주 부회장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무튼 롯데라는 그룹의 경영 투명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본보다도 한국에서 더 큰 부를 창출하고 있는데 주요 주주가 일본기업이라는 게 그토록 비난 받을 일일까.

물론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더 많을 듯하다. 특히 자국제품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구매를 해주었던 분들, 원래부터 롯데 그룹의 영업 및 경영형태 자체가 맘에 안 들었던 분들로서는 실망을 하실 만도 하다. 아마도 필자만 하더라도 더 이상 애국심으로 소비를 하는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롯데의 지분권 경쟁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일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관심이 가는 까닭은 아마도 재벌가의 싸움 구경이 쏠쏠하게 재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 돈 많은 사람들이라고 뭐 딱히 우아하게 사는 것도 아니구나” 하며 지켜보는 사람들이 필자 말고도 꽤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한동안은 이 싸움을 온 국민이 계속 지켜보게 될 듯하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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