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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도 영화도 '밀캠' 유통 판친다… 피멍드는 문화계

입력
2015.08.0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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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녹음하는 '밀녹'도 성행, 대부분 충성도 높은 관객이라

기획사들 법적 대응에 부담… 영화 주요 장면 스포일러는 치명타

출판계 불법 복제도 고질병, 작년 만화 5700만편 복제·유통

최근 뮤지컬 공연장을 찾은 최지영(31)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을 망치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 옆자리 관객이 끊임없이 카메라를 만지작거려 소리와 불빛 때문에 도저히 공연에 몰입할 수 없었던 것. 카메라로 몰래 무대를 촬영하는 것 같았지만 최씨는 별 다른 항의를 하지 못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놓은 것은 맞지만 확실하지도 않은데 녹화하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뭐하고, 덩달아 조마조마해져 영 집중을 못했다” 고 토로했다.

문화계의 저작권 침해 행위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공연, 영화, 음악, 출판, 게임 등 문화 전반에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콘텐츠를 무단으로 복제하고 유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에서 발표한 ‘2015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불법복제물 시장 규모는 3,629억원이다. 불법복제물 이용량은 22억 6,100만개로, 국민 10명 중 4명이 불법복제물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통 경로의 90%는 온라인으로, 토렌트와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콘텐츠를 주고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연계에는 몰래 녹음하는 ‘밀녹’, 몰래 촬영하는‘밀캠’이란 신조어가 나돌 정도로 불법 촬영이 성행하고 있다. 이 같은 불법복제물 생산자는 대부분 일반 관객으로, 일부는 자신이 소장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유통 및 판매에도 나서고 있다. 실제 포털사이트와 공연 커뮤니티 등에는 밀녹 파일을 팔거나 맞바꾸겠다며 자신이 가진 수십 건의 밀녹 리스트를 공개한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심지어 한 공연을 캐스팅 별로 녹음하거나, 한 배우의 모든 공연 파일을 소장하고 있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며 “특히 녹음은 촬영에 비해 티가 안 나 현장에서 제지하기가 어려운데, 장비까지 발달해 상황이 악화했다”고 말했다.

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 행위지만, 밀녹을 하고 유포하는 이들이 대부분 충성도가 높은 공연 소비자인 만큼, 기획사에서는 이들을 향해 법적 조치를 거론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객석에서 카메라나 마이크가 보이는 것 같아도 옆 자리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어 즉각 제지하는 것이 어렵고, 촬영분 삭제 요구를 해도 관객이 강하게 잡아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영화계는 공연에 비해 녹화 영상의 화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밀녹족이 많지 않지만, 명장면을 소장하고자 하는 욕심에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 관객은 더러 존재한다. 한 영화수입사 관계자는 “예전처럼 영화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찍어 웹하드에 올리는 행위는 없어졌다”면서도 “조악한 화질의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려졌을 때 입는 저작권 피해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유포된 사진과 영상이 영화의 주요 장면일 경우 스포일러가 돼 잠재적 관객 유치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영화 전편이 불법적으로 노출되는 경우는 정말 끔찍한 악몽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도 짧은 동영상이 블로그 등에 게재돼 관객 감소에 영향을 줄 것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밝혔다.

공연장과 영화관에서의 촬영 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한다는 점에서도 지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월 ‘강남1970’을 보기 위해 남자친구와 영화관을 찾은 김이연(25)씨는 앞 줄에 앉은 한 중년 여성이 특정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스마트폰 불빛을 번쩍이는 바람에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김씨는 “남자친구와의 첫 데이트코스였는데 기분이 상해 그날 데이트는 망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출판계의 불법 복제도 고질병이다. 대학이나 학원에서 교재를 불법 제본하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스캔을 통해 온라인 유통으로 넘어가면서 피해가 심각해졌다. 불법복제가 가장 성한 분야는 만화. 지난해에만 5,704만편의 만화가 복제ㆍ유통됐다. 미생, 슬램덩크 같은 인기 만화는 토렌트나 P2P사이트에서 손쉽게 전권을 구할 수 있다.

이는 2010년을 전후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PC가 대중화하면서 스마트기기를 통해 책을 보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에 맞춰 전문적으로 스캔을 대행해주는 업체도 생겨났다. 지난해 이들 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예고돼 현재는 주춤한 상태지만, 최근엔 개인이 북스캔 모바일 앱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CD를 복사하듯 손쉽게 전자책을 만들 수 있다. 전자책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마트기기로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이 불법 복제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명백한 저작권 침해 행위에도 출판계는 마땅히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4월 회원 출판사들에게 ‘불법유통 사례와 증거를 수집해 알려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창작자들의 피땀을 도루묵으로 만드는 불법복제의 주원인은 소비자들의 희박한 저작권 의식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방지 대책뿐 아니라 사후 처벌에도 주의를 기울여 소비자들의 경각심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동영상 촬영 등은 분명 불법행위라 관객들의 양식에 기댈 수 밖에 없다”며 “극장 안 통제보다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미환 mhoh@hankookilbo.com

라제기 wenders@hankookilbo.com

황수현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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