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공익법인 설립은 어려워"… 가족대책委 "삼성과 직접 협상 원해"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던 황유미(당시 23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8년 만에 나온 조정위(위원장ㆍ김지형)의 중재안에 대해 협상 주체인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와 삼성전자 모두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합의안 도출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삼성전자는 중재안 숙의기간 마지막 날인 3일 중재안의 골자였던 1,000억원의 공익법인 설립 대신 1,000억원의 사내 기금을 조성해 보상금 지급과 산업재해 예방 연구에 쓰겠다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이 밖에도 ▦상주 협력사 퇴직자도 피해보상 대상에 포함 ▦외부위원 4,5명을 포함한 종합진단팀 구성 ▦권고안의 질병 잠복기 14년에서 10년으로 조정 ▦사과문 발표 등을 제시했다. 수정안은 삼성전자를 상시 감시할 우려가 큰 공익법인 설립을 피하면서 가대위 등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당초 삼성전자는 공익법인에 삼성전자 입장을 대변할 인사가 포함되지 않고, 공익법인이 임명할 옴부즈맨이 사업장 내 안전관리를 명목으로 경영상황 전반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고안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지난달 조정위가 발표한 권고안에는 ▦삼성전자의 1,000억원 기부로 산업재해 예방 목적의 공익법인 설립 ▦공익법인이 위촉한 3명 이상 옴부즈맨의 삼성전자 내부 재해 관리 시스템 점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 정보 공개 ▦대표이사 사과 등이 담겼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조정위 권고안과 별개로 우리 입장을 내놓은 것”이라며 “공익법인과 달리 기금이 조성되면 신속하게 보상을 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기금 운용과 사용처 등 세부방안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삼성전자 산재 피해자들의 가족모임인 가대위 측도 지난달 31일 조정위의 권고안에 수정안을 제시한 상태다. 가대위 송창호 대표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공익법인을 통해 기부금의 70%만 보상에 쓰도록 한 권고안의 보상원칙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보상에 있어서는 유가족들이 삼성전자와 직접 협상을 벌이겠다는 수정안을 조정위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협상 주체 중 유일하게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시민단체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는 “제 3자를 통해 만든 조정안을 따르겠다고 제안한 삼성전자가 이를 깨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권고안에는 공익법인 설립을 3개월 안에 마치고, 연내 보상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며 “삼성전자가 공익법인 설립에 오랜 시간이 걸려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대위와 삼성전자 모두 조정위 권고안에 사실상 이의를 제기하면서 추가 조정 절차가불가피해 졌다. 조정권고안에는 이해당사자들의 수정 제안이 있고, 절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조정절차를 계속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최대 쟁점인 공익법인 설립의 경우 삼성전자가 반대하는데다, 가대위도 직접 협상을 통해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고 있어 논의 자체가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박두용 한국산업보건학회장(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도 “가대위ㆍ반올림ㆍ삼성전자의 의견이 엇갈려 새로운 중재안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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