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가든 이후 다른 모습 보여줄 기회 없어 은퇴 고민할 때
모든 것 걸고 싶은 작품 만나 힐링
‘미스코리아 출신’ ‘마네킹 몸매’ ‘베이글녀’. 배우 김사랑(38)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연기보다 외모가 더 부각됐던 게 사실이다. SBS ‘시크릿 가든’ 이후 4년 만에 JTBC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에 출연했을 때도 그녀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화려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드라마에서 ‘비주얼 담당’을 할 것이라는 예단 때문이었다.
이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녀는 화려한 의상과 진한 메이크업을 지우고 청순하고 가련한 여인으로 나타났다. 깊은 내면 연기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야말로 김사랑의 ‘재발견’이었다.
알고 보니 그간 김사랑의 고민은 깊었다. 최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사랑은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내 모든 걸 걸어보고 싶은 작품이 생겼고,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은동아’였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발탁돼 그 이듬해 연예계에 진출한 김사랑은 15년간 스캔들 한 번 없이 평탄했다. 그랬던 그가 “은퇴까지 고민했다”니. 그는 “‘시크릿 가든’ 이후 배우로서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지난 4년 간 다른 모습을 보여줄 만한 작품이나 캐릭터를 못 만났어요. 이 상태로라면 연기자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쭉 뻗은 몸매로 재벌가나 ‘차도녀’를 연기하던 김사랑이었다. 드라마의 타이틀 롤이 아니어도, 여주인공 친구로만 나와도 주목을 받았다. 패션이나 스타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를 장악했다. 하지만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낮았다. 사실 그가 맡았던 ‘시크릿 가든’의 CF 감독 윤슬, 영화 ‘라듸오 데이즈’의 재즈가수 마리,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의 초절정 섹시 교생 엄지영 등은 빼어난 연기력이 필요한 역할도 아니었다. 김사랑의 고민이 깊어진 이유다.
이때 김사랑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대본이 ‘사랑하는 은동아’다. 사고로 인한 역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부이자 대필작가 서정은이 20년이나 자신을 찾아온 첫 사랑 지은호(주진모)와 다시 만나는 멜로 드라마다. 김사랑으로서는 아이 엄마는 물론, 기억상실증이나 감수성 짙은 멜로 연기도 처음이었다. 신선한 도전이었다.
그는 “상실한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는 과정이어서 매회 그 감정을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8회까지 남자주인공 주진모와 대면하는 장면이 없다가 10회에 만나 기억이 돌아온 감정 연기를 품어내야 했던 것이 쉽지 않았다. “드라마 특성상 회차대로 촬영하는 게 아니어서 기억이 돌아온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을 번갈아 찍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거의 매일 대본을 1회부터 쭉 다시 읽었다”고했다. 그는 체중이 3.5㎏이나 줄었지만 “행복한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김사랑의 노력이 통한 걸까. ‘사랑하는 은동아’는 젊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리기 시작했다. “주진모 김사랑 연기가 가슴을 적신다”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데 잔잔한 멜로가 나오니 좋다” 등의 의견이 온라인을 뒤덮었다.
“지금까지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적이 없었어요. 항상 (대중에게) 사랑 받을 수 있을까 갈망했던 저로서는 이번에 힐링까지 한 겁니다. 이젠 쉬지 않고 팬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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