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출신 고려인 4세 바샤군, 아버지 12년 전 산재로 하반신 마비
본국으로 돌아가면 지원금 끊겨… 내년 공업고 졸업 땐 한국 떠날 처지
"열심히 車정비 자격증 땄는데… 제2고향 한국서 일할 수 있었으면"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4세 천 바샤(21)는 가족을 가난의 수렁에서 건져 올릴 유일한 희망이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온 아버지는 사고로 하반신을 못쓰게 됐고, 다른 가족들도 경제적 어려움과 장애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6년 전 입국한 바샤는 경기 부천 부천공업고를 졸업하는 내년 2월이면 한국에서 추방될 처지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어학연수생(D-4) 비자로 국내에 머무를 수 있었으나 교복을 벗는 순간 불법 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이주민 자녀의 삶을 다룬 소설 ‘완득이’의 인기에 힘입어 다문화 가정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좀 더 따뜻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 속 완득이의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주 노동자가 많아지며 자녀의 체류도 덩달아 장기화하고 있지만 까다로운 ‘비자’의 벽 앞에 눈물짓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버지 겐나(46)씨는 2000년 겨울 한국에 왔다. 사실 그의 할아버지는 한국인이다. 식민지시절 일제를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조부는 벌목공으로 일하다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의 조선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우즈벡에 정착하게 됐다. 할아버지가 조국을 등진 지 70년 만에 손자는 외국인노동자 신분으로 한국을 찾았다. 3세대에 걸친 유전이었지만 삶에 지친 그에게 한국에 대한 감회는 없었다. 그는 단지 가족과 행복하게 살 날을 그리며 열심히 일했다. 소박한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3년 경기 부천시의 한 조립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허리를 짓눌려 하반신이 마비된 것이다. 13년째 휠체어를 타고 인천 근로복지공단인천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그는 지금도 밤이 되면 극심한 통증이 밀려온다. 부인 허 올가(45)씨는 그의 간병을 하러 2006년 입국했고, 홀로 지내야 했던 바샤와 여동생(19) 남매도 2009년 뒤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네 식구가 한데 모였다는 기쁨도 잠시. 빈곤은 가족을 괴롭혔다. 바샤 가족의 수입원은 근로복지공단이 매월 지급하는 170여만원이 전부다. 겐나씨는 우즈벡으로 돌아가면 지원금이 끊기고 의료 환경도 나빠 한국에 머무르는 편이 낫다. 곧 고교를 졸업하는 바샤는 이런 가족을 위해 가장 노릇을 할 준비도 했다. 바샤는 3일 “3월부터 필기 공부와 실습에 매진해 일주일 전 자동차정비기능사 공인자격증을 취득했다”며 “한국에서 아버지 병도 고치고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자가 발목을 잡고 있다. 겐나씨는 산업재해로 인한 부상이 완치될 때까지 의료(G-1)비자를 6개월마다 연장하면 국내 체류가 허용된다. 어머니도 간병인 자격(G-1)으로 남편을 보살필 수 있다. 반면 정작 생계를 책임져야 할 바샤와 여동생은 학교를 졸업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귀화나 비자 발급이 손쉬운 박사ㆍ연구원 등 고급인력과 달리 단순 노동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 및 소득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샤의 담임인 부천공고 이한태 교사는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어떻게든 취업을 주선해 가족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제도적 개선과 관용이다. 같은 이주민 출신인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중도 입국한 아동ㆍ청소년에 대해 특별체류자격 부여가 가능해진다. 바샤는 “말은 아직 잘 통하지 않아도 고마운 이웃들 덕분에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게 됐다”며 “지금까지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산업재해를 입은 외국인 노동자라도 가족들의 취업에는 제한을 두고 있다”며 “다만 바샤의 경우는 ‘해외 동포’에 해당할 가능성이 커 다른 해법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바샤 가족에게 한국어 교육과 고충 상담을 지원하는 송인성 경기글로벌센터 대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장기간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 자녀는 늘고 있는데 법무부는 경직된 비자 규정을 고수하고 있다”며 “취업 비자라도 우선 발급해 이주민 가정의 경제적 고통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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