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갈등 부추기는 노동개혁
김무성은 진보ㆍ보수 대립 조장
정권책임 회피와 총선 승리 의도
정부, 여당의 노동개혁 핵심 논리는 세대간 고용대체 효과다. 장년세대의 임금과 일자리를 줄이면 청년세대의 고용이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은 타당성이 있는 걸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4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고령자들을 조기퇴직 시켜야 한다는 일자리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프랑스 등 일부 회원국에서 10년간 실시한 결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다. 오히려 고령자 퇴직에 따른 사회재정 부담만 커졌다. 그러자 OECD는 2005년에 이 전략을 공식 폐기했다. 고령자 고용과 청년실업은 무관하며 대체관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왔다. 국책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은 2011년 청년층과 고령층 간에 직종 분업이 상당히 이뤄졌기 때문에 두 집단의 고용은 대체관계가 아니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노동연구원은 “고령층의 정년 연장으로 인한 청년층 일자리 악화는 지나치게 과대평가됐다”고 밝혔다.
외국과 국내 학계에서 이미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난 ‘고용대체론’을 정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하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세대간 일자리 전쟁을 부추겨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5월 “다른 나라에서는 정년 연장 시 청년층이 반발해서 혼란을 많이 겪었는데, 우리 청년들은 목소리를 별로 안 낸다”고 말했다. 청년실업의 원인은 경기 불황과 정보통신시대의 고용 없는 성장,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다는 건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다. 이런 마당에 경제정책 수장이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청년층을 선동하려는 행태는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
정부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세대간 갈등으로 교묘히 치환하려는 꼼수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국민연금 논의 과정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대체율 인상을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말했다. 현 세대와 미래세대가 협력해 노인세대를 부양하는 국민연금의 기본적인 특성을 도외시하고 노인세대가 젊은 세대의 몫을 등친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정부의 책임은 한 순간에 세대문제로 비화됐다.
정치 위기 국면에서 편을 가르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행태는 현 집권세력의 단골수법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방미 기간 중 행보도 정치적 목적을 갖고 대립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김 대표는 동포 간담회에서 “진보좌파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이라며 “이들의 준동을 막는 방법은 새누리당이 선거에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밖에 나가서까지 ‘대립의 정치’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김 대표를 보면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중국보다는 미국”이라는 발언과 초대 미8군사령관인 월턴 워커 장군 묘소에서의 큰 절도 차기 대선을 의식해 보수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준비된 행동으로 보인다.
노동개혁 속도전이나 해묵은 보수ㆍ진보 이분법 프레임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부와 여당의 필승 전략이 가동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노동개혁 밀어붙이기는 청년세대를 앞세워 아버지 세대를 기득권층으로 규정하고 대립을 조장하면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결과다. 보수ㆍ진보 프레임은 보수지지층의 충성도와 결집도가 높은 여당으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타고난 승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면이 불리하면 색깔론과 진영론을 들고 나오거나 다른 이슈를 내세워 단숨에 전세를 뒤집어왔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불순세력으로 만들어 고립시켰고, ‘성완종 리스트’ 파문 때는 사면문제를 거론하며 물타기를 했다. 그러나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분열시키면 더 큰 것을 잃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사회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로 찢긴 국가를 치유 불능의 상태로 만들 뿐이다.
자식은 부모 탓하고, 부모는 자식 탓하는 나라가 정상일 수는 없다. 진보가 보수를 경멸하고, 보수가 진보를 손가락질하는 나라가 건강할 리 만무하다. 국민을 이간질시키는 정치는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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