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가서 살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커플이 있었다. 같은 모임에 속해 있는 젊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말은 내 귀에는 번번이 이렇게 번역되어 들렸다. 지금 여기의 삶이 싫다고, 어디든 좋으니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고. 아시다시피 이런 경우 그 ‘섬’은 반드시 ‘섬’일 필요는 없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 ‘아프리카’라는 지명을 넣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고향’이라고 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 말을 듣는 이들도 농담처럼 응수하곤 했다. 나도 그러고 싶으니 얼른 가서 자리 잡은 뒤 꼭 초대해 달라고 말이다. 몇 해가 지나는 동안 모임이 있을 때마다 드문드문 그들을 만났다. 그 사이 둘은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도 낳았다. 돌잔치에서 보았을 때 둘의 모습은 무척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였다. 아내는 육아휴직 중이고, 남편은 회사에서 중간관리자가 되어 무척 바쁘기 때문에 아기를 볼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고 했다.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해보니 그 부부가 안 보였다. “제주도에 갔대요.” “아, 여행 갔나 봐요.” “아니요. 아예 살러 갔대요.” 그 말을 들은 모두가 동시에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그들의 입버릇을 다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노상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던 동창생을 스크린 속에서 보게 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섬’이 진짜 섬이었다니. 공허한 넋두리가 아니라, 입 밖으로 하는 서로를 향한 다짐이었다니. 뒤통수를 한 대 쿵 맞은 듯도 했고, 일상의 테두리에서 한 걸음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이 도시의 영웅이란 ‘진짜 떠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만 가지 크고 작은 잡무들이 뒤얽힌 현실을 딱 끊고 또 다른 공간으로 홀연히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막연하게 꿈꾸던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다. 돌잔치 주인공이던 아기는 이제쯤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가 되었을 터였다. 제주로 이사한 것은 그러니까 각각의 개인들이 아니라 하나의 가정이었다. 그 가족이 뿌리를 내린 곳은 제주도 동쪽의 작은 마을이었다. 거기에서 게스트하우스 겸 조그만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꽤 오랫동안 차근차근 이주 준비를 해 온 모양이었다.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혼자서만 섬에 내려가 일을 배우며 개업을 준비했고 아내는 조리사 자격증을 땄단다.
몇 개월 뒤 제주에 간 김에 시간을 내어 그들의 터전에 들러 보았다. 조용한 마을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자 아담하고 예쁜 집이 나왔다. 마당에서는 강아지와 사내아이가 뒤엉켜 놀았고, 잔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나온 여자가 가만히 인사를 했다. 남자는 손님상을 치우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풍경과 닮아 있었다. “참 좋아 보여요.” 나도 모르게 첫 인사 대신 뱉었다. “그렇지도 않아요.” 아내 쪽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이야기는 줄줄이 이어졌다. 비수기에는 손님이 너무 없다고, 비슷한 콘셉트의 숙소들이 많은데 어떻게 경쟁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 경쟁. 나는 그 지독하게 익숙한 단어를 처음 들은 듯이 놀랐다. ‘섬’이라는 장소의 삶에 대해 나는 무엇을 연상한 것인가? 어디에서도 생활은 지속되는 것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또래 친구가 없는 것도 걱정이고, 이방인도 아니고 주민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 탓인지 외롭기만 하다는 아내의 푸념에 남편이 나지막이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제주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반사적으로 그 용감한 부부가 떠오른다. 그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이젠 손님이 좀 늘었을까. 새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을까. 아니면 혹시 섬 밖의 또 다른 섬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래도 좋다. 꿈을 향해 함께 떠났던 기억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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