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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진정성’ 탑재한 원더걸스?

입력
2015.08.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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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리부트’라는 타이틀에 먼저 눈길이 간다. 이번 음반이 무언가 ‘새로운 시작점’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는 어떤 욕망을, ‘리부트’라는 단어를 통해 상징화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기존에 발표한 티저만 봐도 리부트라는 표현은 꽤나 적확한 듯 보인다. 베이스, 드럼, 기타, 피아노 순으로 공개된 이 그럴듯한 티저들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큰 걸림돌이 없는 한 히트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의 시선을 선점하는데 완벽하게 성공한 까닭이다.

신보를 통한 원더걸스의 지향은 다음과 같이 예측된다. 먼저 기존 아이돌 음악에 없(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탑재하는 것이다. 힌트는 그들이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데, 동영상들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들을 한번 쭉 읽어보기 바란다. 이 댓글들의 의견은 대체로 이렇게 수렴된다. “이제 원더걸스는 아이돌의 클래스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오래된 대립 관계 하나를 연상케 한다. 가짜와 진짜는 ‘진정성’으로 구분될 수 있고, 대중음악에서 대개 전자는 ‘아이돌’을, 후자는 ‘리얼 악기’의 세계를 꼽는다는 식이다. 그렇다. 앞서 말한 ‘무언가’는 바로 이 ‘진정성’이다.

● 8월 3일 드디어 공개한 'I feel you' 뮤비

진정성이라, 세상에 이만큼 애매모호한 단어가 또 있을까. 당신은 음악을 감상할 때 진정성을 어떻게 감별하는가. 진짜 악기를 쓴 밴드 음악에 진정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꽤 봤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요즘에는 진정성을 엄청 따지는 외국 음악 잡지들에서도 진짜 악기라고는 한 톨도 쓰지 않는 음악들에게 아주 높은 점수를 준다. 심지어 이런 음악들이 리얼 밴드보다 더 강렬하게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하며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직접 연주’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좋은 음악이라고 확신하고는 한다. 글쎄. 그 믿음이 대견하지만, 그 믿음이 때로는 좀 안타깝다.

어떤 사람들은 ‘싱어송라이터’가 더 높은 진정성을 담보한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아이고, 그런데 이걸 어쩌나.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로 꼽히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은 모두 남이 써준 노래를 불렀다. 예시가 너무 부족하다고?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등등 작곡가의 곡을 받아 노래한 가수들의 리스트는 정말이지 끝도 없다. 우리 가요 쪽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더 높게 쳐주는 관습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 확신을 이해하지만, 그 확신이 때로는 좀 불편하다.

원더걸스 신보 타이틀곡 'I feel you' 티저 영상. 유튜브 캡처.
원더걸스 신보 타이틀곡 'I feel you' 티저 영상. 유튜브 캡처.

그러나 이러한 믿음과 확신이 여전히 뿌리 깊음을 알기에 아이돌 기획사 측에서는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이를 테면 “이번 앨범에서는 멤버들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직접 참여했어요.” 하는 식으로 말이다. 원더걸스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리얼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전시한 뒤에 ‘연주는 멤버가 직접 했음’을 큼지막한 폰트로 홍보하고, 가장 최근에 공개한 ‘앨범 스포일러’에서는 송라이팅에 멤버들이 관여했음을 다시 한번 인지시켰다. 뭐랄까. 아이돌 출신이지만 이제는 여타 아이돌들과 가는 길이 다름을, 아이돌 전문 기획사에서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역설.

결국 중요한 건 취향이라고 본다. 누구에게나 취미는 있을 것이다. 만약 음악 듣기가 취미라고 한다면, 이걸 습관화했을 때 취미가 취향으로 성숙된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 취향이라는 놈을 끊임없이 갈고 닦으면 어떤 안목이나 통찰 같은 게 형성되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정말 뛰어난 안목과 통찰을 지닌 사람이 어떤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들은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타인의 취향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또한 모든 걸 ‘취존’이나 ‘개취’라는 만능키로 퉁치지도 않았다. 대신 섬세하고 깊은 언어들로 자신의 취향을 설명하고, 때로는 설득하려 애썼다. ‘모든 것(everything)’은 때로 ‘아무 것도 아님(nothing)’을 뜻한다는 걸, 자신의 통찰과 안목을 통해 깨닫고 있는 덕분이다. 부디 당신과 내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솔직히 나도 아직 멀었다.

음악 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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