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사과에 용서… 합의율 79%
피해 학생 부모, 판사에 감사편지도
"학교의 징계 위주 처분에는 한계점… 화해절차 활성화돼야 개선 효과 커"
올해 3월 서울가정법원 여현주 판사에게 학교폭력 피해 학생 A군의 어머니가 편지를 보냈다. “지난 1년의 시간이 악몽 같았다”며 “아들은 사건 이후에도 가해학생들의 욕설과 조롱, 같은 반 친구들의 외면에 상처를 입고 주위 사람들을 불신했는데 (법원의) 화해권고 절차로 자존감이 조금이나마 회복됐다”는 감사의 내용이었다.
2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재판에 넘겨진 학교폭력 사건 등에서 가해소년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로 해결된 경우가 올해 4월까지 205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가법이 소년법상 화해권고 제도를 적용해 5년간 259건을 화해권고했는데 합의율이 79%에 달한 것이다. 소년법상 화해권고 제도는 2008년 시행됐고, 서울가법은 2010년 7월부터 이 제도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판사와 갈등해결 전문가가 나서 가해소년과 피해자가 화해하도록 하는 제도로, 합의가 되면 판사는 보호처분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양측이 동의해야만 진행되며 성폭력범죄 등 중범죄 사건은 화해권고 대상에서 제외된다.
A군 사건은 학교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으나, A군이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경우였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B(당시 13세)군 등 1학년 학생 6명은 같은 반 친구 A군을 집단 구타했다. 평소 A군이 자신들을 험담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이유였다. B군 등은 차례로 A군의 머리를 때렸고, 배드민턴 채로 폭행하거나 A군의 목을 졸랐다. B군 등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로부터 봉사활동과 특별교육 5시간 이수 징계처분을 받긴 했지만, A군의 부모 심정으로는 솜방망이 징계였다. 가해학생들이 사과 한마디 없이 아들과 한 교실에서 계속 지내야 하는 상황에 불안과 분노로 가슴이 타 들어갔다. A군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회복적 관점의 화해절차가 활성화돼야 관계 개선 효과가 크고 바람직한데, 현행법상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화해조정보단 징계 위주로만 처분하도록 돼 있다”고 한계점을 지적했다.
A군 부모는 경찰 고소에 나섰고 사건은 재판으로 넘겨졌다. 사건을 맡은 소년부 판사는 2월 화해권고회부를 제안했다. 판사와 신경정신과 원장이 “아들의 상처회복 차원에서라도 가해자 측의 사과를 들어볼 필요는 있다”는 취지로 권하자 A군 부모는 거부해오던 불편한 만남을 하기로 결심했다. A군 부모가 연락을 원치 않아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게 어려웠던 가해소년 부모들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교육하겠다”며 “또 폭행사건이 일어나면 A군이 요구했던 대로 전학을 가겠다”고 약속했다. A군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설명할 때 B군 등이 경청하자 마음을 열었다. 판사는 한 달여 뒤 B군 등에게 보호처분을 내리지 않고 심리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가해학생 부모들도 “화해권고위원의 중재로 아이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화해에 이르게 돼 감사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G(당시 13세)군은 학교 친구 H군의 목에 담뱃불을 갖다 대고 무리 3명과 함께 학교운동장에서 뺨을 때려 소년부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달 화해권고절차에서 거듭 용서를 구해 사건이 매듭지어졌다. G군이 “잘못을 뉘우치며, 피해자가 다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막아주겠다”고 약속하며 피해학생과 가족의 불안을 잠재운 점이 고려됐다. 이후 두 학생은 친구 관계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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