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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롯데가의 동실조과(同室操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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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롯데가의 동실조과(同室操戈)

입력
2015.08.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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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롯데호텔 신관이 나뭇잎 사이로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롯데호텔 신관이 나뭇잎 사이로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위(魏)왕에 오른 조조가 어느날 참모 가후를 불러 물었다. “후계자로 누구를 세웠으면 좋겠느냐.” 조조는 원래 큰 아들 조비보다 글 잘 쓰고 총명한 셋째 아들 조식을 마음에 두었다.

가후는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가후는 뒤늦게 대답했다. “잠시 원소가 후계자 고른 일을 생각했습니다.”

강북의 패자였던 원소는 죽기 전에 셋째 아들 원상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장남 원담과 차남 원희에게 통치지역 일부를 떼어 주었다. 그 바람에 원소 사후 원상을 인정하지 못한 원담과 원희는 반란을 일으켜 치열한 내전 끝에 모두 망하고 말았다.

조조는 퍼뜩 정신이 들어 조식 대신 조비를 후계자로 세웠다. 하지만 조비는 왕이 된 뒤 강력한 경쟁자였던 동생 조식을 없애려 든다. 이때 조식이 읊은 유명한 시가 ‘한 콩깍지에서 나온 콩끼리 왜 이리 볶아 대는가’라는 내용의 ‘칠보시’(七步詩)로 알려진 ‘자두연기’(煮豆燃箕)다.

한 집안 사람끼리 창을 겨눈다는 뜻의 동실조과(同室操戈)의 교훈은 비단 중국 고전 삼국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성경에도 보면 비슷한 내용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나온다. 여호와가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아 들이자 질투심에 눈이 먼 카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인다. 이후 서양에서는 아버지나 권력자의 총애를 받기 위해 형제간에 반목하는 것을 ‘카인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동실조과와 카인 콤플렉스가 전하는 교훈은 분명하다. 바로 탐욕에 대한 경계다. 권력이든 재물이든 지나친 욕심을 부려 싸우면 종국에는 모두 망할 것이라는 교훈을 전한다.

고전들이 전하는 교훈을 우리는 현실 속에서 숱하게 봤다. 현대그룹은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다섯째였던 고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했으나 차남 정몽구 회장의 반발로 소위 ‘왕자의 난’을 벌인 끝에 쪼개졌다.

두산그룹도 2005년 창업주인 박두병 회장의 차남인 고 박용오 회장이 갖고 있던 경영권을 3남 박용성 회장이 가져가면서 법적 분쟁으로 치달았다. 고 박용오 회장은 그룹 분리를 요구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자 박용성 박용만 형제가 1,00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사법기관에 투서했다. 이후 고 박용오 회장은 가문에서 제명됐고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28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28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진그룹, 금호그룹, 동아제약 등도 재산을 둘러싸고 집안끼리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요즘은 롯데그룹이 이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신격호 총괄회장의 동생들은 한 차례 분란을 겪은 끝에 농심, 푸르밀 등으로 잇따라 쪼개진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신 총괄회장의 아들들이 분란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동실조과의 교훈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들이 재벌들에게 유난히 많은 것은 결국 잘못된 부의 세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70, 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재벌들은 2, 3세들에게도 부의 재분배나 가진 자의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보다 돈에 대한 집착만 물려준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보니 결코 사회공헌이나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재벌가에서 다툼이 일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곧 돈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천민 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재벌가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늘 꼽는 사례여서 식상할 수 있지만 이 대목에 스웨덴의 발렌버그 가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5대에 걸쳐 150년 넘게 부를 세습한 발렌버그 가문은 사브, 에릭슨, 스카니아 등 스웨덴 굴지의 기업 지분을 소유하며 스웨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가문의 후계자를 쉽게 선정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0년 동안 다른 기업에 다니며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등 엄격한 평가를 거쳐서 자질을 검증 받아야 후계자로 인정 받는다. 특히 이들은 무엇보다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는 가훈처럼 결코 가진 자의 티를 내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 이들 같은 재벌을 볼 수 있을까. 국민들은 막장 드라마 같은 재벌들의 지겨운 싸움을 결코 곱게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최연진 산업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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