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국제음악제서 선보여, 세계적 안무가 돌바시안과 작업
기존의 오케스트라 버전 대신 실내악으로 편곡해 무대에 올려
"국내 학생과 해외 후원자 연결, 장학재단도 내년엔 꼭 만들 것"
1일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 세계 초연한 그레고리 돌바시안의 모던발레 ‘볼레로’는 한 편의 시(詩)를 몸으로 표현한 듯한 무대였다. “(볼레로) 음악이 반복ㆍ발전하면서 관객을 유혹하듯, 안무도 반복적인 춤에 조금씩 동작을 더한다”(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는 해설처럼 무용수들은 첼로 선율을 따라 정적인 춤을 되풀이하며 무대 위를 미끄러졌다.
1928년 모리스 라벨이 발레리나 이다 루빈시타인(1880~1960)을 위해 작곡한 15분짜리 발레곡 ‘볼레로’는 작은 북으로 시작해 똑같은 멜로디를 수십 번 반복하며 점차 강해지다 마지막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끝맺는 곡. 이 곡에 맞춘 춤은 1961년 프랑스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작품이 정전으로 손꼽힌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3년 전부터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인 서희에게 이 곡에 맞춘 새 발레를 요청했고, 서희는 ABT 단원들과 만든 프로젝트 그룹 ‘인텐시오’의 신작 안무를 의뢰했던 4명의 안무가 중 뉴욕 출신의 돌바시안에게 ‘볼레로’를 맡겼다.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버전 대신 4대의 첼로와 퍼커션으로 편곡한 실내악을 선보인 이날 공연에서 음악은 송영훈, 고봉인, 박상민, 루이스 클라렛(이상 첼로) 아드리앙 페뤼숑(퍼커션)이 연주했다.
어슴푸레한 무대 위. 퍼커션 연주가 울려 퍼지자 서희가 인사를 건네는 듯한 몇 가지 포즈를 취한 후 무대 왼쪽에 정좌해 참선을 하는 듯한 동작을 선보이며 리듬을 탄다. 조명이 오른쪽을 비추자 ABT에서 서희와 호흡을 맞춰온 발레리노 알렉산드르 암무디가 등장, 서희와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일어선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같은 인사를 또 나눈다. 멜로디가 반복될 때마다 이 춤에서 하나씩 동작을 늘리면서 표현도 커지다 음악이 고조되자 서희는 새가 날 듯, 알렉산드르 어깨를 짚고 올라선다.
공연 직후 만난 서희는 “베자르 안무의 ‘볼레로’가 워낙 유명해 새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돌바시안이 힙합 하는 친구예요. 클래식 음악과 컨템포러리 안무를 합하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발레 공연장보다 미끄러운)무대 특성을 살려서 일부러 털실로 짠 두꺼운 양말 신고 슬라이딩하는 안무도 선보였는데, 양말 신고 춤춘 것도 처음이네요.”(웃음)
볼레로에 맞춰 2인무를 선보이는 무용수는 하늘로 뻗는 손가락 끝, 기역자로 들어 올리는 발끝 동작 하나까지 우아했다. 4대의 첼로가 터질 듯한 연주를 선보이기 직전, 알렉산드르는 서희를 번쩍 들어올렸다. 타이트한 무용복에 비친 발레리나 특유의 마른 근육은 푸른 조명에 빛났다.
응원차 평창을 찾은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기술을 강조하기보다 잔잔하게 감성을 끌어내는 작품이라 무용수의 비중이 큰 안무”라며 “음악인들과의 협업 방식도 신선했다. 좋은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서희는 “(협업을 하며)음악을 듣는 방식도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저는 이제까지 ‘이 박자에 이 동작’이라고 생각하며 음악을 들었는데,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가 아니라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니까 이 악기 저 악기 소리를 다 듣게 되더라고요.”
2012년 입단 7년 만에 ABT 수석 무용수가 되면서 주목을 받아온 그는 상반기에만 ‘지젤’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 등 ABT 봄 시즌 프로그램 8개 중 7개 작품에 주역으로 서며 간판스타로 부상했다. 그는 “외부 공연 기회가 많지만, 지금은 한창 발레단에서 배우고 기반을 쌓는 시기라 한눈팔고 싶지 않다. 단 국내 발레 학생과 해외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장학재단을 몇 년 전부터 추진 중인데, 내년까지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평창=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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