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6월 신동빈 긴급 호출
"중국 사업 적자 왜 보고 안 하나"
뺨까지 떄리며 격노·배신감 표출
신선호 "신격호, 경영권 뺏겼다 생각"
차남은 결국 아버지 끌어내려
"형제 싸움 넘어 또다른 戰線" 분석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의 본질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간 ‘형제의 난’이 아니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 회장간 ‘부자전쟁’이란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들 부자는 성장배경과 경영철학, 인사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오래 전부터 갈등이 잠복되어 왔으며, 지난 6월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 만큼 골이 깊어 졌다는 분석이다.
31일 롯데그룹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6월 중순 신 회장을 롯데호텔 34층 집무실로 긴급 호출, “중국에서 얼마나 적자가 많길래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역정을 냈다. 신 회장은 진노한 아버지의 기색에 당황해 “중국 사업은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걸리고 자세한 것은 조만간 보고를 드리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신 총괄회장은 “그런 식으로 사업을 해서 되겠느냐, 나를 속이려 들지 말고 제대로 보고하라”며 신 회장의 오른 뺨을 때렸고 신 회장은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한 소식통은 “신 회장의 나이가 올해 만 60세다. 아무리 엄격한 아버지이지만 환갑 나이에 뺨까지 맞은 신 회장으로선 매우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이 이렇게 진노한 데는 ‘자식마저 나를 속인다’는 심리적 강박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 총괄회장은 전통적인 일본 경영방식에 익숙해 무엇보다 업무보고를 중시한다. 아울러 창업주로서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신 총괄회장이 작년 말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을 직위 해제했던 것도 보고 누락이었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신 전 부회장과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신 회장이 주도한 롯데의 중국사업부진에 대해 자주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궁지에 몰린 신 회장은 지난달 7일 강희태 롯데백화점 부사장과 함께 신 총괄회장을 찾아가 롯데의 중국사업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지만, 신 총괄회장은 냉랭한 태도를 접지 않았다. 이후 지난달 15일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르고, 이를 언론보도를 보고 뒤늦게 확인한 신 총괄회장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신 전 부회장측은 KBS 인터뷰에서 ‘7월17일자로 장남 신동주를 한국 롯데그룹 회장으로 임명하고, 차남 신동빈을 후계자로 승인한 사실이 없다’는 신 총괄회장의 서명과 도장이 찍힌 문서를 공개했다. 같은 취지의 내용을 담은 신 총괄회장의 육성파일도 공개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내용은 다른 사람이 쓰고 총괄회장 서명만 받았다.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자료”라고 반박했다.
한편 가족제사모임 참석차 이날 귀국한 신 총괄회장의 셋째 남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총괄회장은 아들인 신 회장에게 경영권을 탈취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유통사업을 중시하는 신 총괄회장과 달리, 골드만삭스 노무라증권 등에서 글로벌 경영흐름을 수업한 신 회장은 기존 사업만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신 회장은 특히 금융과 에너지사업 부문 등으로 사업다각화에 전력을 쏟았는데,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등 금융사 인수는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한 관계자는 “껌과 초콜릿, 백화점과 할인점 등 제과와 유통사업을 통해 성장한 롯데의 전통과 역사를 고려할 때 신 총괄회장은 금융이나 석유화학 등 이질적인 산업문화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 회장은 총수 지위에 올랐으면서도 작은 투자, 인사 하나까지 신 총괄회장에게 보고해야 했다”면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상당히 누적되어 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견은 신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인 제2 롯데월드 건립을 놓고도 표면화했다. 신 회장으로선 아버지의 숙원사업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건설과정에서 떠안게 될 정치적 부담과 리스크를 놓고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번 분쟁은 누적된 갈등이 경영권 문제를 놓고 폭발한 것”이라며 “부자간 분쟁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장학만 선임기자 trend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