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동식물 불법거래는 중대 범죄, 193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
짐바브웨 국민 사자 참혹하게 사냥… 치과의사 美당국이 조사 나서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국민 사자’ 세실의 머리를 참혹하게 자른 뒤 기념 사진까지 찍은 미국인 치과 의사에게 전 세계의 공분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야생 동ㆍ식물의 밀렵과 불법 거래에 대해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채택됐다. 미국 당국도 치과 의사를 직접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유엔 총회는 30일(현지시간) 독일 등 70여개국이 공동 발의한 ‘야생 동ㆍ식물의 불법 밀거래 차단 결의안’을 193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야생동물 관련 범죄에 대해 포괄적인 내용의 단독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의안에 따르면 각 국은 야생 동ㆍ식물 불법 거래를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 또 유엔 사무총장은 결의안 이행 결과를 총회에 보고하고 야생 동식물 보호를 위한 유엔 특사 임명을 검토하기로 했다. 헤랄드 브라운 유엔 주재 독일대사는 “코뿔소 뿔 1파운드를 판 금액이 금 1파운드 가격 보다 비싸다”라며 “어느 한 국가나 단체의 노력 만으로는 야생동물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야생동물보호청(USFWS)은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가 자행한 사자 사냥의 사실 관계를 조사하기로 했다. 세실은 올해 13살의 수사자로, 짐바브웨 서부 황게 국립공원의 터줏대감이자 명물이다. 하지만 지난달 초 화살과 총에 맞은 뒤 목이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채 공원 밖에서 발견됐다. 파머는 5만달러를 주고 현지 가이드를 고용했으며, 죽은 동물을 차에 매달아 사자를 국립 공원 밖으로 유인한 뒤 죽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바브웨 당국은 한 달 가까이 끈질긴 수사를 펼친 끝에 28일 파머를 용의자로 지목하는 한편, 세실의 죽음을 방조한 혐의로 파머를 도운 가이드 2명을 기소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미니애폴리스 외곽에 있는 파머의 치과병원 앞에는 수백 명이 모여 ‘내가 세실이다’ ‘살육자’ 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파머의 행동을 규탄했다. 일부 시민들은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는 사자, 호랑이, 원숭이 등 야생동물의 인형을 병원 앞에 갖다 놓기도 했다. 파머는 지난달 28일 “세실이 보호받는 사자인지 몰랐다”며 “다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냥했다”라고 밝힌 뒤 잠적한 상태다.
한편, 국제환경보호연합(IUCN)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이처럼 ‘과시용 사냥’의 표적이 돼 죽는 사자는 연간 900마리에 달하며 이 가운데 3분의2가 합법적 사냥이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사냥꾼들에게 돈을 받고 야생동물 사냥을 허가하기 때문이다. 또 코뿔소 뿔은 최음 효과가 있다는 속설 때문에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상아 때문에 살육 당하는 코끼리도 매년 3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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