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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죽어가는 ‘선한 말’들

입력
2015.07.3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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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말들이 죽어가고 있다. 얼마 전 국립국어원은 ‘착하다’란 말의 뜻을 조정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사전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이 말이 주로 가격, 상품 등에 적용된 지가 자못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착하다가 사람 이외의 것에 적용하는 말이 됐다는 뜻이다. 또한 착함을 판정하는 근거가 도덕적 차원에서 실리적 차원으로 옮겨갔다는 의미기도 하다. 따져보면 가격이나 상품이 착한 까닭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익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도덕적 훌륭함을 나타내는 말은 죽어가고, 대신 금전적 이득을 나타내는 말이 새로 태어난 셈이다.

본래 착함을 따지는 것은 인간만이 하는, 또 할 수 있는 행위다. 인간만이 가치를 위한 활동을 이득을 위한 활동보다 앞세울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 운운하며 동물에 대해 갖은 ‘갑질’을 부려왔다. ‘박쥐 같다’, ‘철새 같다’ 하며, 동물을 왜곡하는 폭력도 예사로 행사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 인간이기에 쓸 수 있는 말을 인간이 아닌 것에 주로 붙이고 있다. 단지 착하다는 말만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인간 이길 멈추는, 곧 인간다운 사람도 함께 죽어가고 있다.

문제는 착하다가 그래도 형편이 낫다는 사실이다. 근대문명을 일군 인권, 법치, 민주 등은 물론, 미래사회를 일굴 생태, 평화, 공존과 같은 말들은 뇌사 상태다. 몇 년 전부터 소위 ‘사회적 갑’들이 작정하고 제거에 나선 탓이다. 이들의 제거를 위해 그들은 다양한 방식을 동원했다. 가령 지난 이명박 정부 때는 선한 말을 무능과 연결시키는 방식을 즐겨 썼다. 유능하다고 주장되면, 위장전입이나 투기, 탈세 같은 불법행위는 사소한 일탈로 치부됐다. 물론 여기서 ‘유능’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갑들에게나 도움이 되는 능력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패악 탓에 준법은 무능하기에 해야 하는 것이 됐고, 법치는 ‘사회적 을’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죽어갔다.

연식은 꽤 됐지만, 착함을 위선과 연계하는 방식도 여전히 중용됐다. 공자는 이렇게 푸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예를 엄격하게 행한 것인데 사람들은 아첨이 너무 심하다며 욕한다고. 저 옛날, 한자권에서만 이러했음은 아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20세기를 두고, 우리는 “인격적, 도덕적 행위가 위선이라는 혐의를 받고, 때로는 그런 이유로 해서 비난을 받을 만한 시대서 살고 있다”고 짚었다. 선을 행함이 위선으로 읽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비난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하기야 선의 실천을 해악과 연동시켜 백안시하는 일은 이미 우리네 사회생활의 기본이 된 듯싶다. 양심이나 상식을 따르면 결과적으로 조직의 이익에 손해가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내려다 보니, 어느덧 나 하나만 눈 감으면 모두가 편하다는 말을 되뇌게 된다. 삶터 여기저기서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선한 말 죽이기에 동참하지는 않더라도 기꺼이 이를 외면하게 된다. 사회적 갑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모독하며 민주를 우롱해도 ‘나만 피해보지 않으면 돼!’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인간이다’라는 자의식을 놓지 않는다. 사회적 갑들이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인간만큼 ‘지속 가능한’ 이윤 창출 기계는 없으니 말이다.

선한 말은 말의 고갱이다. 또한 말은 동물로서의 사람을 인간답게 만들어준 고갱이다. 게다가 말은 고도로 조직된 생명체와 같아, 생명의 고갱이가 죽으면 생명체가 죽듯, 말의 고갱이가 죽으면 말도 죽고 만다. 곧 선한 말이 죽으면 말도 따라 죽게 되고, 말이 죽으면 인간다움도 소거되어 동물로서의 사람만 남게 된다. 결국 선한 말을 죽임은 인간다움을 죽이는 일과 다름없게 된다. 의도하고 살인을 하면 중형에 처해진다. 그렇다면 작정하고 선한 말을 죽이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까.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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