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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때문에 수혈 포기한 백혈병 소년… 당신이 판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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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때문에 수혈 포기한 백혈병 소년… 당신이 판사라면

입력
2015.07.3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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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수혈 집행 위해 법원에 신청… 종교적 신념과 아동복지 사이서

결단 내려야 했던 재판관의 고뇌, 해피엔딩 불허로 독자 성찰케 해

칠드런 액트·이언 매큐언 지음·민은영 옮김· 한겨레출판 발행·296쪽·1만3,500원
칠드런 액트·이언 매큐언 지음·민은영 옮김· 한겨레출판 발행·296쪽·1만3,500원

한 소년이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수혈을 받지 못하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신실한 신도인 부모와 아이는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고 있다. 병원은 수혈을 집행하기 위해 법원명령을 신청한다. 당신이 판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속죄'의 작가 이언 매큐언은 신작 '칠드런 액트'에서 신념과 생명 중 진짜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한겨레출판 제공 ⓒJoost van den Broek
'속죄'의 작가 이언 매큐언은 신작 '칠드런 액트'에서 신념과 생명 중 진짜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한겨레출판 제공 ⓒJoost van den Broek

이언 매큐언의 신작 ‘칠드런 액트’의 제목은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유명한 ‘아동법’에서 따온 것이다.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한 사건을 판단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한 법이다. 그렇다면 아동의 복지란 무엇인가. 소년의 순수한 종교적 신념을 알아주는 것?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_인권과도 직결되는_을 보호하는 것? 아니면 신념과 인권을 제쳐두고 일단 생명을 구하는 것?

예순을 바라보는 고등법원 판사 피오나는 사흘이라는 촉박한 기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다. 대중의 기대와 달리 특정 종교의 특정한 믿음은 함부로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숨이라는 절체절명의 화두가 걸려 있을 때에만 법은 종교와 가정이라는 폐쇄 집단으로 조심스레 개입해 들어갈 수 있다. 피오나는 소년을 만나기로 한다. 그의 신념이 부모와 교회 어른들로부터 ‘보고 익힌 풍월’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성인이 되는 18세 생일을 3개월 앞둔 애덤 헨리는 성별을 초월한 푸릇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막 싹트기 시작한 시에 대한 열정, 바이올린에 보이는 뛰어난 재능. “제 생각을 바꾸려고 오신 거에요? 제 생각을 바로 잡으려고요?” 10대 소년다운 치기 어린 말투에도 불구하고 애덤은 면회를 마치고 가려는 피오나를 향해 언제 다시 올 거냐고 애타게 묻는다. 내일까지 수혈을 못하면 죽게 된다는 걸 들었으면서도. 피오나는 마음을 굳힌다.

“저는 A와 그의 부모, 회중의 장로들이 본 법정이 가장 중시하는 A의 복지에 해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합니다. A는 그런 결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본 판결에서 A의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A의 생명입니다.”

네티즌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하지만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애덤은 자신이 속한 종교가 얼마나 멍청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며 제2의 인생을 경주하는 출발선에 피오나가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성의 갑옷을 껴입은 피오나는 그것을 거부하고, 애덤은 사탄에게 속아 십자가를 물에 빠뜨린 신도가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는 내용의 시를 보내온다.

작가가 해피엔딩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은 피오나와 함께 자문의 구덩이에 주저앉게 된다. 무엇이 옳은 행동이었을까. ‘아동의 복지’란 단어에서 잊고 있었던 것.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온 아이가 안길 또 하나의 품. 피오나는 ‘복지’와 원래부터 한 쌍인 ‘사회’란 단어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그 사회가 돼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동은 섬이 아니다.”

법과 이성, 신앙과 사랑 사이의 균열을 포착해 그리는 작가의 역량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난다. 자신의 친구이자 전직 항소법원 판사인 앨런 워드로부터 이야기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작가는 소설가로서 “판단을 유보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에 안도와 감사를 표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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