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건축물은 왜 베를린·도쿄와 닮았나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서울 건축물은 왜 베를린·도쿄와 닮았나

입력
2015.07.31 15:28
0 0

그리스 아테네를 동경한 독일, 그런 독일을 꿈 꾼 일본

식민지 조선 한성에 獨 건축양식 이식 리틀 도쿄로

세 도시에 기억과 망각 담론 작동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ㆍ도쿄ㆍ서울 전진성 지음 천년의상상 발행ㆍ784쪽ㆍ3만2,000원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임동근 김종배 지음 반비 발행ㆍ416쪽ㆍ1만8,000원

서울은 격변하는 도시다. 발작적으로 진행된 철거와 재개발 광풍은 도처에서 천지개벽을 자아냈다. 소 몰고 밭 갈던 허허벌판에 오피스지구와 아파트단지를, 판잣집을 부단히 지워낸 산비탈에 뉴타운을, 경성식 건물을 헐어낸 자리에 유리빌딩들을 세워 올렸다. 도시가 멀쑥해지고도 청계천, 광화문, 시청, 동대문, 한강변은 변모를 거듭했다. 지긋지긋하건 애틋하건 적잖은 기억이 사진과 개별 뇌리 속으로 사라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서울 변천사의 근저에 자리한 욕망을 남다른 시야에서 고찰한 두 권의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 학문적 토대는 지구사와 정치지리학으로 다르나 두 권 모두 오늘날 서울을 빚어낸 담론, 환상, 권력을 묵직하면서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어 나란히 읽을 만하다.

1894년 완공된 독일제국의회 의사당(맨 위 사진)은 아테네를 흠모한 ‘프로이센 고전주의’의 굵직한 건축 기풍에 여타 고전주의 요소가 혼재됐다. 동양의 독일을 꿈꾼 일본에서는 1904년 건물 모서리 주 출입구 위에 창을 지닌 웅대한 돔을 설치해 프로이센식 엄격함을 재현한 요코하마 정금은행 사옥(가운데 사진)이 들어섰다. 1912년 조선에 준공된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 지점 사옥(마지막 사진) 역시 독일식 고전주의의 변종으로 기관 성격만큼이나 위압적인 외관을 갖췄다. 천년의상상 제공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ㆍ도쿄ㆍ서울’(천년의 상상)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 도시를 계보학적 관점에서 꿰어낸 기록이다. 저자는 독일 훔볼트대에서 독일 현대 지성사 등을 공부한 전진성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그는 거시적 관점에서 그리스를 동경한 독일, 동양의 독일이 되고자 했던 일본, 일본 제국주의가 확장된 식민지 조선의 건축물을 줄줄이 불러내 연쇄적인 ‘아테네 환상’의 열병을 앓은 당대의 진풍경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고대 세계에 대한 동경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19세기 유럽에서다.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 싫증 난 건축가들이 고대로 눈을 돌렸고 파리에는 로마 신전에서 영감을 받은 팡테옹이, 런던에는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대영박물관이 등장했다.

프랑스 혁명의 대의에 맞서 ‘자발적 시민성과 의무감, 국가에 대한 충성심 고취’의 기치를 내세운 독일 보수주의 노선은 로마보다 먼 과거, 고대 아테네에서 이상을 찾았다. 민족주의 상징으로 아테네를 소환한 아전인수격 흠모는 독일 지역 맹주 프로이센에 의해 사조를 이뤘다.

위병소, 구 박물관, 왕립극장의 모습으로 베를린 도심 곳곳에 구현된 ‘프로이센 고전주의’를 포착해낸 저자의 시선은 이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일본으로 이동한다. 신전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기둥이나 굵직한 골격, 로마식 아치 대신 사용한 수평적인 그리스식 아키트레이브, 신화 속 인물을 묘사하는 부조와 조각품이 두루 쓰인 이런 건축 방식이 별안간 일본으로 이식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구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일본에서 ‘프로이센’은 친독파들에 의해 하나의 근대적 주체이자 추구해야 할 절대 담론으로 부상했다.

저자는 고대에 대한 과도한 상상력에서 발원한 독일 건축 양식이 식민지 조선의 수도 한성을 경성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도 적극 활용됐다고 지적한다.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고자 했던 일제는 도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회색 화강암과 철근 콘크리트의 석조건물을 짓고 늑골구조의 청동 돔까지 올려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웠다. 당시 일본이 장악한 영토내의 가장 큰 건물이다.

조선의 성벽을 전면적으로 철거해내고 길을 내고 터를 닦아 강제로 들어선 근대의 웅장한 허울들이 비참한 식민지 현실을 호도했고, 제국을 선전하는 하나의 담론으로 기능했다는 지적에는 ‘모던의 무조건적 추구’에 대한 성찰이 묵직하게 깔려있다.“결국 서양과 동양의 동시대성은 부정되고 역사는 모든 민족이 제 차례를 기다리는 일종의 대기실로 변한다.”

그가 이처럼 세 도시에서 구현된 “기억과 망각의 예술”, 건축 및 도시계획의 분석에 공을 들인 것은 해방 이후에도 망각의 담론이 작동해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미군정청, 서울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다 철거됐지만 저자는 뜻밖에 이 철거와 경복궁 복원을 냉정하게 비판한다. 앞서 일제 건축이 토착문화를 망각시키고 새 기억의 담론을 주입했듯이, 급작스러운 철거 역시 대한민국 건국의 선포, 서울 수복 장면 등 그 건물에 깃든 동시대인들의 기억을 돌연 부정한 조치라는 이유다.

“패망 이후 이렇다 할 부흥운동도 없었을 만큼 민심과 유리되었던 옛 조선왕조의 유적(경복궁)에 대한 정체 모를 향수는 물론, 이와 대비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본산에 대한 사무친 적대감 또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생생한 기억을 담고 있던 ‘기억의 환경들’ 이 사라진 자리에 인위적 연출을 통해 존립하게 된 ‘기억의 터’만 남겨지는 일이 공동의 기억을 돌보는 일이 계속될수록 서울이 “구조적으로 텅 빈 도시가 될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는 큰 울림을 남긴다. “중요한 것은 건축물의 양식이나 예술적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 삶의 알뜰한 보금자리와 공동의 기억을 돌보는 문제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할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이다. 건축과 도시계획은 기술이기에 앞서 담론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20세기 이후 오늘날 서울의 행정, 경관, 삶을 만든 독특한 통치술과 전략 및 여파를 조목조목 진단하며 현대사를 횡단하는 책이다. 서울의 통치사를 10년 넘게 연구해온 임동근 서울대 지리학과 BK교수와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같은 주제로 2013년 방송한 팟캐스트 내용을 다듬어 엮었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기구인 동사무소가 1920년 여름 유행한 콜레라에 일제 경찰이 과도하게 대응하며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자 부촌 유지들이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도, 다른 곳이 아닌 테헤란로가 대표적인 서울의 사무지구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미국 유학파 연구원들의 부동산 투자가 숨어있었다는 사실도 모두 이 책을 통해 처음 배웠다.

글을 도란도란 입말로 풀어낸 덕에 쉽게 읽히지만, 곳곳에서 도시를 둘러싼 통치와 자본권력의 작동 배경을 분석해내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 밖에 경부고속도로와 그린벨트, 아파트 장사와 재벌 및 중산층, 금융위기와 도시의 변화, 신자유주의와 이중도시 등 서울을 이해하는 핵심주제들을 망라했다.

“이제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왜 이런 꼴로 살고 있는지 분명히 알 것 같다”는 사회학자 노명우 아주대 교수의 평이 영락없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