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코미디언 빌 코스비(77)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35명이 잡지 표지모델로 등장한 이후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코스비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유사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궁지에 몰린 상태다. 미국의 ‘살아있는 전설’은 자상한 아빠였을까, 연쇄 성폭행범이었을까. 코스비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다.
"코스비의 두 얼굴을 폭로합니다"
미국 시사주간지인 뉴욕 매거진은 지난 27일(현지시각) 코스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피해여성 46명 중 35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여성들은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며 당당히 얼굴을 공개하고,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인터뷰는 6개월에 걸쳐 각각 따로 진행됐지만 피해자들이 코스비에게 겪은 피해 시기와 과정, 이후 느낀 모멸감, 후유증 등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뉴욕매거진에 따르면, 피해 여성들은 1970~80년대 모델이나 배우를 지망했던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여성들로 진정제를 먹고 항거 불능의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존경 받는 코미디언이자 흑인 사회의 원로인 코스비를 상대로 피해 사실을 주장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30여년이 훌쩍 지나서야 용기를 냈다. (▶뉴욕매거진 바로가기)
생생한 육성 증언들… 파장 확산
피해 여성들은 성폭행 당시의 상황과, 코스비가 어떤 성적 행위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해 충격을 주고 있다. 슈퍼모델인 제니스 디킨슨은 “1982년 '코스비 가족' 캐스팅 문제로 코스비는 내게 연기할 기회를 주겠다며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생리통 때문에 진통제를 부탁했더니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와인 한 잔과 함께 알약을 건네 받았는데,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난 알몸이었다"고 말했다. 디킨슨은 "너무 오래 침묵했지만, 이제 용기를 냈다. 피해 여성들이 그가 유명하고 부자이며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겁이 나서 침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모델 바바라 보먼의 사례도 유사하다. 보먼은 "1985년 배우를 꿈꾸던 17세 때 코스비로부터 첫 성폭행을 당했고, 2년이나 지속됐다"고 주장했다. 보먼은 "코스비는 당시 국민 아빠였고, 내게도 따뜻한 아빠가 될 거라고 믿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괴롭다. 미국이 가장 좋아하는 아버지가 성폭행범이라는 내 말을 누가 믿었겠느냐"고 말했다.
"무대 밖 코스비는 악랄"… 무너지는 전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한 1970~80년대 코스비의 명성은 대단했다. 코스비는 1965년 TV드라마 '아이스파이(I spy)’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3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남자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코스비 최고의 히트작인 시트콤 '코스비 가족(The Cosby Show)'은 8년이나 장수하며 큰 인기를 누렸고, 그는 가정적이면서 다정한 아버지로서의 이미지를 다져 '미국의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 꼽혔다. 장학사업과 기부활동을 활발히 했을 뿐 아니라, 2002년엔 미국 국민에게 가장 큰 영예로 여겨지는 자유메달을 받기도 했다. (▶기사보기)
무대에선 '성공한 아버지'인 코스비였지만 무대 밖 악랄한 모습은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오래 전 그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다. 여성들은 유명 연예인이자 '권력자'인 코스비를 상대로 피해를 입은 사실을 공개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코미디 작가였던 조안 타르시스도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다시는 코미디를 쓸 수 없었다. 사람들이 그가 말했던 농담을 거론하면서 ‘웃기지 않아?’ 라고 말할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고 고백했다.
계속된 성추문… 코스비 명성 무너질까
코스비의 성폭행 의혹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지만 조명을 받진 못했다. 코스비는 그때마다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도 기소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7일 AP통신이 2005년 코스비의 성폭행 사건 재판 기록을 공개하면서, 코스비의 변명은 '거짓'임이 드러난 상태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코스비는 최면 효과가 있는 진정제를 먹여 여성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기사보기)
코스비의 계속된 성추문에 미국 내 여론은 차갑다. CNN은 "코스비가 성적으로 학대한 여성이 스쿨버스에 가득 찰 것"이라며 "(이번 인터뷰로) 코스비 역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여론도 피해여성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SNS에서는 '빈 의자(#TheEmpthyChair)'라는 해시태그를 단 응원메시지가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코스비의 강제 약물 투여를 비꼬는 사진을 SNS에 올리며 조롱하고 있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있는 코스비의 명패를 제거하라는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곽범신 인턴기자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4)
박은별 인턴기자 (건국대 경영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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